• 최종편집 2022-12-08(목)
 


홍석진 목사.jpg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1824)는 1819년 <메두사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을 발표합니다. 한 때 나폴레옹을 태우기도 했다는 전함 메두사호가 아프리카 세네갈 연안에서 좌초(坐礁)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부자와 귀족들은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 반면 나머지 150명 가까운 승객들은 버림을 받았고 급조한 뗏목에서 2주일을 견뎌야 했습니다. 동료의 시신을 먹으면서까지 버텼건만 생존자는 불과 15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당시의 참상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예고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공산주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선전포고를 날렸습니다(1848,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이후 불황 등으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는 그러나 극적으로 변신에 성공합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복지제도 등이 마련되었고, “수정자본주의”라고도 부르는 <자본주의 2.0>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냉전 시대를 지나며 자본주의는 전 세계를 전장(戰場)으로 치열한 쟁투를 벌이면서도 승승장구를 거듭합니다. 그러나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고 또 실업율과 인플레이션이 동반 상승하는 새로운 현상으로 인해 또 다시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때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이념과 도구로 삼고 한 번 더 변신을 꾀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소련연방을 비롯한 공산주의 체제들이 일거에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인이자 저술가인 피터 반스(Peter Barnes)는 이를 <자본주의 3.0>(2006)이라 불렀습니다. 적수가 없어져버린 자본주의는 그러나 점차 괴물로 진화되어 갔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SPC 불매운동’을 알고 있습니까? 지난 10월 15일, 평택의 제빵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초반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사측은 현장을 일부 천으로만 가린 채 계속해서 공장을 가동했고, 시민들의 분노가 이 지점에서 폭발해 해당 기업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케팅학의 대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이러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기업자본주의(Corporation Capitalism)”라 불렀습니다(Confronting Capitalism, 2015).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알게 된 투기적 금융자본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카지노(Casino) 자본주의”, 최근 전기자동차 보조금철폐조치에서도 알 수 있는 미국 위주의 “카우보이(Cowboy) 자본주의”, 정부와 기업과 유착 관계로 인해 시장을 왜곡하고 불공정을 양산하는 “정실(Crony) 자본주의” 개념들이 연이어 등장했습니다. 날로 심각해지는 양극화나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듯 보였습니다. 경제평론가인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가 <자본주의 4.0>을 들고 나온 때도 바로 이 무렵입니다. 그는 동명의 저서에서 구체적인 전략이나 정책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자본주의는 현존하는 위기를 결국은 잘 극복하고 다시 회생하리라는 희망적인 예언을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자본주의는 어떤 모습일까요? 코틀러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간적(Humanistic) 자본주의”나 “인도적(Humane) 자본주의”, 이를 위한 “포용적(Inclusive) 자본주의”와 “건강한(Healthy) 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 “깨어 있는(Conscious) 자본주의”와 “온정적(Compassionate) 자본주의”라는 개념들을 제시했습니다.

지난 이백 년 동안 자본주의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힘의 근거는 뭐니 해도 ‘변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주하고 집착했다면 자본주의는 벌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까요? 윤리적인 색채를 가미한 전술했던 두 개의 ‘C-자본주의’에 더해, ‘회개하는(Contrite) 자본주의’와 자본-노동과 국가-시민이 서로 ‘협력하는(Collaborative) 자본주의’ 그리고 개발과 환경이 ‘양립가능한(Compatible) 자본주의’라는 또 다른 ‘C-자본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아울러 우리 스스로는 외국의 자본이나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한국인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Corea Capitalism)’를 모색하고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니, 물질자본이 아니라 영적자본,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예수주의를 지향하는 ‘성경적 자본주의(Cannon Capitalism)’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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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새로운 자본주의(C-Capitalism)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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