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5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중3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수많은 스승들이 계셨습니다. 우리가 스승이라고 말할 때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의 선생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들이 스승이십니다. 성도들의 존경과 신임으로 임직을 한 중직자들도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학교에서 가르쳐 주시는 교사들도 스승이십니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양육해 주시던 부모님께서도 엄격하게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필자에게는 수많은 스승들이 계셔서 제가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스승들이 기독교계에 많을 때 교회 안에서 다음세대가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영적 스승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가 무엇일까요?
먼저,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8절에서 ‘아들 디모데야’라고 편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2절에서도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다음세대를 바라보는 스승의 태도는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좋은 지식을 전하고, 좋은 환경을 제공해도 사랑이 없는 교육은 헛수고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가 있습니다. 많은 스승들이 있습니다.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있지만 현실은 참 어둡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5절 말씀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않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다’라고 기록합니다. 사도 바울은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자녀를 낳는 심정으로 제자를 양육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필자가 만나는 청소년들은 위기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이 청소년들을 지도하다보면 지독히 말을 듣지 않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열매를 거두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스승은 바로 아버지의 심정으로 양육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적 스승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양육하는 스승입니다.
두 번째, 아버지의 마음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은 하나님 말씀만이 모든 사람을 온전하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교육의 교재는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온전하게 만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생활에서는 다음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에 너무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모두 좋은 대학 진학과 연봉이 높은 곳에 취업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학교의 성적보다는 생명의 말씀이 더 소중함을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단순한 대학 진학보다 믿음의 비전을 키우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중요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임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본을 보이는 부모, 교사,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세대에게 말씀을 읽는 모습, 묵상하는 모습,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순간순간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영적 스승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참 스승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참 제자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참 스승, 하나님이 찾으시는 영적 스승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다음세대가 세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