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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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에서 복무 중이던 밀턴 로젠 랍비는 1950년 11월 5일 주일 이른 아침 제너럴 하세(General Hasse)호로 요코하마를 출발하여 한국으로 향하게 된다. 그 배에는 미군 1천명 이상의 장교와 사병이 타고 있었다. 이틀 후 7일에는 일본 남부의 나가사키현의 사세보(世保, Sasebo) 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1천명이 탑승하여 한국으로 향해 11월 10일 인천항에 도착했다. 로젠이 Der Morgen Zhornal (Jewish Morning Herald)에 기고한 보고에 의하면 인천에 도착한 새벽 3시부터 낮 11시까지 8시간 동안 작은 선박으로 병사들의 상륙을 도왔다고 한다. 한국의 겨울이지만 이날은 맑고 따뜻했으나 큰 건물은 파괴되어 있었고 여기 저기 벽돌들이 흩어져 있고 거리는 정비되지 않은 어설픈 상태였다고 했다. 이날 처음 만난 한국인들은 남자이든 여자이든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가난과 배고픔이 베여 있는 슬픈 눈빛이었다고 기록했다. 인천항에서 군 기지로 이동은 기차를 이용했는데, 군인들은 손을 흔드는 한국인들에게 창문으로 캔디와 담배를 던져 주었다. 기지에 도착했으나 허름한 건물이었고 침대가 없어 한국인들이 짚으로 만든 침대 비슷한 것을 만들어 주었고 거기서 군용 리쿠사쿠로 휴식을 취했다. 숙소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DDT로 소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식사를 못해 극도로 배가 고팠는데, 돼지고기가 나와 유대인이었던 밀턴 로젠은 채소와 과일, 그리고 커피만 마셨다고 한다.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인 남녀 어른과 어린아이들이 힘을 모아 캠프를 급조했다고 한다.

로젠과 미군병사들은 일단 인천항으로 입항했는데, 알몬드 장군(General Almond) 휘하의 원산의 10군단으로 배속되어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장비와 무기 이동이 우선순위였다. 그래서 예정된 날에 원산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것은 군사기밀이었는데 실제로는 목적지가 원산이 아니라 부산이었다고 한다. 로젠이 신문에 쓴 보고를 보면, 부산까지는 기차로 이동하게 되는데, 기차는 더럽고 성한 곳 없이 지저분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 피난민들로 들끓었는데, 미군이 음식을 준비하면 어린 아이들이 몰려와 빈 캉통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경쟁했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지치고 고통스런 아픔이 서려 있었다고 기록했다. 인천에서 부산까지는 350마일, 곧 560km인데 주야로 며칠이 걸렸다. 문제는 추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북한 게릴라의 공격 또한 염려되어 두려웠다.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잠을 자는 것인데, 쉬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부산으로 이동하는 병사들 가운데서는 이미 북쪽에서 전선에서 싸웠던 이들이 있었고 어떤 이는 상처를 보여주었고 상처난 전투당시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 전선의 치열함을 알 수 있었다. 부산으로 이동하는 중 기차가 정차하면 키가 작고 바싹 마른 아이들이 잡다한 물건을 가지고 차에 올라 팔아달라고 조르는데, 로젠 군목은 “나는 나의 생애에서 이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으로 물건을 파는 이들을 본 적이 없다”고 기록했다. 13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돈을 가지고 미국 담배, 캔디, 껌을 사고자 했다. 담배 한 갑은 1200원(약 3달라), 껌은 한통이 6백원으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이동하는 동안 일본어를 아는 한국인과 어렵게 대화했는데, 북한의 집은 파괴되고 재산을 강탈당하여 대구로 내려 가는 중이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에 대해 조금 알고 있어서 신기했고, 한국인들은 유대인들은 다 부자인 줄로 착가하고 있다고 썼다.

유대인 군목 밀턴 로젠 랍비가 부산에 도착한 것은 1950년 12월이었다. 부산은 인민군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이었고, 철도도 무사했다고 기록했다. 부산역에서 군 캠프로 이동하는데 바싹 마른 아이들이 자기들 보다 세배 이상 무거운 짐을 나르고, 날씬한 여자들도 머리에 짐을 이고 두 손으로 가방을 들고 어깨에도 가방을 두르고 짐을 나르는데 놀라울 뿐이었다고 한다. 유대인 군목은 일단 부산으로 왔으나 약 일 주일 후 원산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그는 저녁마다 부산 거리를 다니며 부산 사람들을 보았는데, 부산은 옛것과 새것이 뒤섞인 도시라고 생각했다. 지게를 지고 다니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현대적인 복장이나 물품들이 유통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로젠의 눈에 비친 부산은 도둑들이 설치는 도시였다. 군용품이 가게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또 미국 영국 인도 캐나다인 등 여러 종족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특히 인도군인들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잘 다려진 군복이 흥미로웠다고 기록했다. 로젠은 8일간 부산 생활을 경험하고 9일째 되는 날 부산을 떠나도록 명령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는 LST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가 다른 병사들과 무기 탱크 트럭 등 장비를 싣고 출발을 준비하고 있을 바로 그 때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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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 교계: 부산에 온 유대인 군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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