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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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찾아온 반가운 명절, 추석입니다. 본래 우리네 추석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시점에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절기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에게는 지치고 힘이 드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에서 획기적인 ‘추석 차례상 표준안’을 내놓았습니다. 중요한 줄로만 여겼던 ‘홍동백서(紅東白西)’나 ‘조율이시(棗栗梨枾)’는 원래 예법 관련 문헌에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다섯 가지 기본적인 음식과 네 가지 과실만 차려도 충분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예법을 다루는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으니, 앞으로 상당한 변화가 뒤따르리라 생각합니다.

추석과 관련해서 “기준”을 거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해제되었으니 이번 명절은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될 터인데, 의외로 정치적인 대화가 많이 오간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번 추석에 가장 많이 언급될 말들 중 하나가 “공정”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대선 기간 중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저마다 “공정”을 외쳤고, 이제 백여 일이 지나 그 평가가 이루어질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공정”이 “기준”과 관련 있습니다. 일상에서 언제 “공정”이란 말을 쓰나요? ‘공정한 심판’, ‘공정한 거래’, ‘공정한 경쟁’ 등인데, 모두 “기준”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영역에서 기준이 정해져 있으면, 그 영역에 속하는 누구에게나 형평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운동경기를 예로 든다면, 친정팀에게는 유리하게 원정팀에게는 불리하게 동일한 규칙을 달리 적용한다면 그 경기는 공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정”은 “공평(公平)”이나 “형평(衡平)”과는 사뭇 다른 개념입니다. 일단 “평(平)”자가 들어가는 말은 ‘같게 하다, 고르게 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기준”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때, 공정은 주어진 기준을 전제로 하지만 공평은 그 기준 자체가 불합리하다면 이를 문제 삼는 측면이 있습니다. 같은 기준 하에서 똑같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정”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어 같은 기회를 주어도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면 “공평”하다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버드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이 근자에 펴낸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2020)이 이러한 측면을 잘 설명합니다. 서울대의 신재용 교수 또한 『공정한 보상』(2021)에서 비슷한 취지로 공정은 ‘능력주의(Meritocracy)’로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단적으로 ‘공정한 불공평’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등적인 요소보다 외적인 공정 자체를 더 강조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MZ 세대’가 대표적인데, 이른바 ‘인국공 사건’이나 ‘반페미 논쟁’에서 이들은 얼마나 공정을 중요시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성경은 어떨까요? 공정입니까, 공평입니까? 정답은 “공의(체데크)”로, 양자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해야 합니다. 성경적 공의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곡식 되와 저울 추 그리고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는 명령인데(신 25:13; 잠 20:10),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공정의 원칙을 선언한 말씀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이들을 돌보라는 명령인데(출 22:21-22; 신 24:19-21),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경쟁력이 없는 이들을 배려하려는 소수자 보호의 원칙을 선언한 말씀들입니다. 이러한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을 때, 다시 말해서 공의로 이루어진 신적 질서가 깨어질 때, 이를 복구하기 위한 조치가 바로 성경적 “정의(미쉬파트)”입니다. 재판관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사사(Judges)”가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 말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성질을 띠는 성경의 초막절에 관해 신명기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신 16:14)라는 구절을 부가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공정의 원칙을 강조해 왔더라도, 명절만은 공평의 원칙을 잊지 말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번 추석에 우리 신앙인들만이라도 공정과 공평을 함께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대화만 할 게 아니라 십시일반 가족들이 힘을 모아 어려운 이웃이나 먼 나라들을 위해 성경적 공의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이번 추석은 공평이 뒷받침하는 공정이 말해지고 행해지는 뜻 깊은 명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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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공정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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