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인 첫째를 양육하면서 자주 되뇌는 단어 중 하나가 ‘시행착오’이다.
“나는 이 아이가 첫째이기에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니 나 역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어떤 날은 시행착오를 겪어도 노련하게 피해가고 싶은데 잘 안된다. 5살 어린아이가 달리기를 하면 꼭 한번은 돌덩이에 걸려 넘어지듯 나 역시 마음을 단단히 먹다가도 한순간에 걸려 넘어지며, 그 자리에 일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첫째가 1학기 기말 성적표를 뭉그적거리며 내놓지 않고 있는 걸 참다 참다, 등굣길에 차 안에서 “지금 당장 성적표를 내 놓지 않으면 학교 앞에서 차를 세우고 너와 몇 십 분을 있어야 할거야”란 나의 윽박에 궁시렁 거리며 성적표를 내놓는데, 점수를 보는 순간 아이가 미룬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험을 친 후 본인이 가채점해서 나에게 말한 것과 실제 성적이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차 안에서 슬쩍 점수를 훑어본 후, 정말 너무 많은 말들이 하고 싶었지만 다 참고 딱 한마디만 했다(물론, 이 말도 하지 않았어야 했나 싶지만).
“얘아, 앞으로는 실제 성적표가 나오기까지 아무말 안하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아이는 이미 본인이 생각한 점수보다 잘 안나왔기에 짜증과 화가 난 상태였는데 엄마가 한 마디 더 보태니 이 때다 싶어 모든 탓을 나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 성적에 관심도 없었으면서…”부터 시작해 마지막에는 “엄마가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로 끝이 났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 아이의 말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나도 마음이 상해 같이 받아쳐줬다.
“엄마가 너에게 도와준 것이 없다고!”라고 말한 후 차를 세우고, 차 문 잠금을 해제 시켰다.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
아이는 순간,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곧장 차에서 내렸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고 달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뒤에 타고 있던 애들이 아우성을 친다. “엄마, 오빠 다시 태우러 가요. 여기서 학교까지 가려면 얼마나 먼데…” “엄마, 형 불쌍해요 다시 가요.”
2분 정도 가다 다시 돌아서 첫째 앞에 차를 세웠는데, 어쭈, 이 아이의 반응이 예사롭지가 않다. “안 타요. 그냥 가요.” 나도 내 마음을 추스르고, 나름의 용서를 하고자 차를 돌렸는데, 그냥 가란다.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고 생각해 이젠 진짜 앞만 보고 달렸다. 나머지 아이들의 학교까지 가면서 머릿속에 수많은 경우와 어쩔 수 없는 변명들이 뒤섞였지만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참을성이 부족해 소중한 아침에 물을 일부러 엎질렀는지, 아니면 한번은 엎질러질 물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내 앞에 물은 흥건히 흘렀고, 이 물 또한 내가 닦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들을 다 데려다주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집으로 가면서 큰 아이가 걸어서 학교에 잘 가고 있는지 밖을 계속 쳐다봤다. 잠시 후 학교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오르막 내리막길을 한 20분 넘게 걸었을 것이다. 그다지 긴 거리는 아니지만, 등굣길에 엄마와 갈등을 일으킨 후 걷는 그 길의 발검음을 무거웠을 것이다. 혼자 걸으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엄마인 나의 생각은 복잡하고, 첫째를 키우며 겪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나의 부족함과 합해져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짐이 두렵다는 사실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올라가며 생각을 정돈하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나의 연약함과 모자람을 깨달으며 한 걸음, 그런 모자람이 죄의식으로 자리잡지 않게 밀어내면서 또 한 걸음, 오후에 만나서 대화할 아이를 생각하며 또 한 걸음을 내딛으며 단정하지 못한 생각들을 하나로 모이게 했다.
오늘 하루는 생각할 시간이 꽤 길어질 것 같고, 여전히 육아가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