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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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TV예능 프로에서 인간이 가장 빨리 늙는 나이는 70세와 78세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바싹 늙는다는 어느 박사 연구 보고를 들었다. 고령자의 가구 독거 비율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어디에서 죽을 것인가’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룬 책을 보았다. 70대는 100명 중에 70명이 죽고 30명이 살고, 80대는 80명이 죽고 20명이 살고, 90대는 90명이 죽고 10명이 산다는 이야기다. 일본 학술지의 연구 보고서에도 2050년에는 인구 중 40%가 죽는다는 보고에 그만큼 일본은 노년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방관할 때가 아니다.

최근 모일간지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의 저서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자’(이주희 옮김, 동양북스) 216쪽에서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를 넘어서 매년 태어나는 아이보다 삶을 마감하는 노인이 더 많은 다사(多死)사회, 즉 대량 죽음의 사회시대로 돌입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저자는 “고독사를 두려워하기보다 살아있을 때 고립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익숙한 곳이나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사느냐의 여부가 노후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자녀 세대에게 “부모 임종시 꼭 곁을 지켜야 한다는 ‘임종 입회 콤플렉스’를 갖지 말라”고도 말한다.

부족한 나는 70대 초반에야 노인복지사를 인강으로 배우면서 실제적인 현장에서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부산 서구 괴정동에 있는 모 노인요양원에서 한달간 현장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70대 어느 노인 할머니는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잠자는 시간 외에는 의자에 손을 묶에 두고 지냈다. 같은 요양원 안에서 아픈 노인들끼리 얼마나 시기와 질투가 많던지, 매일 싸움판에 이를 중간에서 말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즈코 교수의 말대로 시설에서 죽는 것 보다 익숙한 공간에서 자기 집에서 간병요양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케어가 훨씬 낫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생의 마지막은 시설이나 병원에서 죽는 것보다 자기의 평소 안식처가 되는 내 집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가족들이 협조해야 한다. 아예 못한다면 간병인 보호를 받아 생을 마감하는 것이 천국 가는 길에 순탄하도록 돕는 것이다. 의사 쓰지가와 시토시가 쓴 책에서 2013년 60세 이상 고령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혼자 사는 고령자의 생활 만족도가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보다 높다’는 자료를 얻었다. “가족과 함께 살면 아무래도 나를 억누르고 스트레스를 더 받아 빨리 죽으니 생활만족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조사에 응한 어느 60대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노인이 되게 되면 며느리는 물론이고 자식도, 손자 손녀들도,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를 멀리하게 되고 결국 부부나 혼자 남게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식도 다 필요가 없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자식들이 가까이 살기보다 멀리있어 자식들 조차도 모르게 살기를 희망하고 있는 추세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제 우리도 학교교육이나 교육교육이나 생활교육 한복판에 죽음교육을 끌어들여야 한다.

작별 인사나 임종은 아예 꿈 꾸지도 말고 평소 유언장이나 일기장에 써놓고 자기가 가진 재산을 비밀을 지킬 수 있는 믿음 있는 변호사한테 유언을 간직하게 하여, 섬기는 교회나 어려운 이웃 아프리카 등 좋은 곳에 기부하는 것이 좋다. 가장 합리적인 부분은 크리스천들은 다음세대를 위하여 장학사업으로 대학에 기부하여 후진양성에 쓰이도록 하는 것이 하늘나라에 가서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해 두기 전에 꼭 해놓고 가야할 것이 있다. 죽기 전에 부부가 묻힐 자리나 묘자리부터 미리 잡아놓고 봉을 하지말고 평평한 잔디 아래에 ‘여기 주님을 섬기다가 하늘 나라에 가는 누구가 잠들어 있다’고 묘자리 비석 돌판에 만들어 놓고 죽어야 한다. 이것은 절대 자식들이 만들기는커녕 화장하여 비석도 묘지도 할까말까 해둘 것을 예상하고 정리해 두고 가야한다.

훗날 죽고나서 형제들끼리 재산 싸움하며 법정까지 가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물려 주지 말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나는 21세기포럼에 절반의 기금을 기부해서 법인을 만들어 매년 시상하는 고 장성만 목사로부터 하늘나라에 가시기 하루 전날 사모님이 바꿔주어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신 장로, 내가 21세기포럼 선교대상(문화예술부문) 제10회(2015년 12월 3일) 시상식을 직접 이사장으로서 전달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네. 벌써 주어야 하는데 서운하게 생각지 말게. 이해하여 주기 바라네.”라고 마지막 유언 같은 말에 나는 그 전화를 받고 눈물이 찡했다. 그래서 그 선교 시상식 때 받은 부상상금 금액 일천만원에서 세금 제외하고 60여만원 모자라는 부분까지 메꾸어 일천만원을 채워서 좋은데 쓰자하여 아직까지 아내, 자식들 모르게 섬기는 은성교회에 다음세대들을 위해 장학금을 내어 놓았다. 약속 금액은 더 있지만 우선 이것이 시발점으로 삼아 선하게 쓰여지기를 바랬다.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죽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너희가 영광을 보리라’ 하셨던 주님. 코람데오 정신으로 훗날 부활하던 그 순간 해피엔딩으로 우리 모든 믿음의 노인들이 초대되리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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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노년에 어느 곳에서 삶을 마무리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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