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종교적 판타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연상호 감독의 '지옥'과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 리저렉션'
종교와 판타지 영화
극장이나 OTT 서비스를 통해 보는 일반적인 드라마들은 상상력이 동원된 상업예술이다. 가장 높은 상상력과 상업성이 결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장르가 판타지이며, 종교가 지닌 초월성이 드러난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판타지(fantasy) 장르로 분류되고 있다. 신이나 악마, 귀신, 요정, 마법, 기적, 영혼 그리고 천국과 지옥, 구원에 대한 묘사가 영화를 끌어가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거나 중요 소재로 등장할 때 현대인들은 이를 판타지로 부르고 있다. 이 안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세상의 현실과 다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나 워쇼스키 자매(원래 ‘워쇼스키 형제’ 감독으로 알려졌으나 성전환 수술 후 이들은 자매 감독이 되었다) 감독의 <매트릭스> 시리즈는 종교적 비유와 은유 그리고 상징들을 풍부하게 사용한 판타지 영화의 전형이다. 2021년 11월에 연상호 감독이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6부작 드라마 <지옥> 또한 지옥의 사자가 현실 세계에서 죄인을 심판하는 등 종교적 표현이 생생히 살아있는 판타지 장르에 해당한다.
<반지의 제왕>이 ‘신화적 판타지’라면 <매트릭스>는 ‘SF 판타지’이며 <지옥>은 판타지 드라마로 보다 세분화 시킬 수 있다. C.S.루이스의 원작 동화를 바탕으로 만든 <나니아 연대기> 영화 시리즈 역시 기독교의 상징과 은유가 짙게 깔린 ‘아동 판타지’ 혹은 ‘가족 판타지’ 영화로 불리운다.
최첨단 컴퓨터 문명으로 둘러싸인 세속적인 사회에서 종교가 지닌 초자연적 이미지와 상징으로 무장한 판타지 영화의 흥행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즉 영화를 통해 종교의 이미지를 보는 관객과 사회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종교가 스크린 위에 등장할 때
판타지 장르를 통해 종교성이 깊이 깔린 주제를 표현하는 영화에 대한 종교학자들의 태도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종교가 대중의 무대 위에 등장한다는 것은 곧 그 종교의 쇠락 또는 소멸을 뜻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보았던 많은 그리스의 우상들(행17장)은 신화와 연극무대 위에 등장할 뿐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북유럽의 주신(主神) 오딘(Odin)과 토르(Thor)는 온라인 게임과 넷플릭스 드라마 제목인 라그나로크(Ragnarok)로 부활했지만, 인간의 경배를 받는 거룩한 신성을 가진 존재로서 신앙하는 사람은 없다.
1980년대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무당으로 알려진 김금화 만신이 한미수교 100주년기념사업 문화사절단에 포함되어 굿을 한국 전통무용의 하나로 미국에서 공연했을 때 종교학자들은 무교의 소멸을 예단하기도 했다. 굿이 한이 맺히거나 복을 비는 사람들을 참여시키기보다는 입장료를 받고 즐기는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것은 그 종교가 성(聖)스러움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금화는 그 뒤로 뉴욕 링컨센터 공연 등 세계적인 무대 위에 올라섰고 대동굿을 통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종교에 대한 또 다른 입장은 앞과는 정반대로 종교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고 내부 신앙인의 결속력을 강화시킨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아데네 시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던 그리스 연극들이 신들을 향한 제의로부터 나왔고, 기독교 영화와 성경의 내용을 담은 뮤지컬들이 신앙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데 한몫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선교의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이를 보여준다. 무교의 경우 무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공연의 형식으로 시연될 때마다 사람을 모으고 또한 무당을 찾는 단골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에 대한 증거로 보는 시각이다.
지옥과 메시아를 다룬 판타지 영화들의 등장
판타지 영화에 등장하는 종교적 이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 제작자의 의도와 관객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먼저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상업적인 영화에서 종교적 이미지나 상징의 사용은 해당 종교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관심을 끌고 그럴듯한 이야기 전개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은 상업적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세계관에 맞춰 의미있는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매트릭스> 처음 개봉되었을 때 기독교와 불교계에서는 저마다 <매트릭스>를 자신의 신앙적 전통을 반영하는 영화라는 상반된 해석을 내놓은 일이 있었다.
<매트릭스> 시리즈가 보여주는 이 세상을 창조한 존재의 설정과 인간의 위기, 그리고 인간을 구원할 메시아의 출현이란 구도는 성경의 흐름과 상당히 유사하다. 메시아의 출현을 예언한 오라클이 등장하고 예수의 사역을 준비한 세례 요한과 같은 역할로서 모피어스가 존재한다. 이번에 개봉된 <매트릭스-리저렉션>(The Matrix Resurrections)은 이전 시리즈의 내용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제목 자체에서부터 네오의 부활을 설정함으로써 이 영화가 성경의 메시아 사상을 일부 패러디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불교계에서도 영화 <매트릭스>를 불교의 철학이 담긴 자신의 영화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매트릭스>를 끌고 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체인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바로 이 점이야말로 불교가 그토록 주장하는 공(空)의 세계를 가르쳐주는 것이란 해석이다. 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뜻하지만, 이 세상의 바른 모습이고 사람들은 세상이 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눈에 보이는 세계(色)에 너무 집착해있기 때문이란 것이 <매트릭스>에 대한 불교적 해석이다.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가 불교의 지옥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면,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기독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에서 말하는 지옥에 가깝다. 흥미롭게도 두 작품 모두 웹툰이 원작이다. <지옥>은 죄인에게 내리는 초월적 존재의 죽음에 대한 고지가 이루어지고 예정된 시간에 나타나 죄인을 찢고 불태워 죽이는 초자연적 존재를 등장시킨다. 또한 이것을 ‘시연’이란 이름으로 생중계하며 회개와 심판을 강조하는 ‘새진리회’라는 사이비 집단과 죄인의 신상을 털고 린치를 가하는 ‘화살촉’이라는 이름의 강성 집단을 묘사하는 방식은 최첨단 디지털 문명 속에 사는 종교인들의 교활함과 물질세계를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우화로도 읽혀질 수 있다. 지옥과 심판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한편 이를 시연하는 댓가로 금전을 제공하고 사람을 규합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새진리회의 모습은 정통 교회가 아닌 이단의 모습을 연상시켜서 그나마 다행이다.
종교적 판타지를 보는 사회의 의미
<지옥>과 <매트릭스>와 같은 종교적 이미지와 은유가 살아있는 영화들을 즐겨보는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종교인 혹은 무신론자들이 다수인 사회란 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갤럽이 최근에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 조사에 따르면 무종교인의 비율이 1984년 첫 조사 이후 처음으로 60%를 넘었음을 알 수 있다.
<표>한국갤럽의 ‘'한국인의 종교’ 2021년 조사(%)
*그 외의 다른 종교: 1984년 3%, 1989년 2%, 19972004년 1%, 그 이후는 1% 미만.
한국갤럽은 무종교인 비율이 증가한 결정적 원인을 청년들의 종교인구가 감소한 데서 찾아냈다. 2004년 조사를 할 당시 20대 종교인구는 45%였는데, 2014년에는 31%, 2021년에는 22%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전통적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 물질의 풍요로움과 세속적 문화에 세례를 받고 자란 청년들은 뜻밖에도 판타지에 익숙하다. 인기있는 온라인 게임의 이미지와 스토리는 신화나 종교적 성격을 가진 판타지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청년 세대는 판타지 게임에 매일 빠져들고 있지 않은가!
교회와 예배에 관심 없는 현대인들이 지옥, 영혼, 심판, 부활과 같은 초월적인 주제를 다루는 영화를 본다는 사실은 적어도 두 가지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첫째 그들은 무종교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으로써 영화의 종교적 메타포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고 다만 판타지 영화에 등장하는 원초적 액션과 새로운 이미지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라는 해석이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예수를 모형으로 삼았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고, 다만 중국 무협지에 나올법한 액션이 재미있어서 본다는 뜻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 종교성 혹은 영적인 욕구를 교회가 아닌 판타지 영화를 통해서 해소하고 만족을 얻으려는 태도가 이 같은 현상을 낳았다고 보는 해석이다. 한 교회의 교인으로서 교리를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는 일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채 기계로 둘러싸인 물질세계에 만족하며 살 수 없는, 뭔가 허전함과 허망함이 마음에 솟구치는 것을 느낄 때 종교적 판타지 영화들은 잠시 마음에 위안을 제공해줄 수 있는 까닭이다. 이것은 자석의 원리처럼 극단적인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은 무엇인가 초월적이며 영적인 대상에 마음이 끌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교회가 종교적 판타지 영화에 심취한 무종교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은 조금 더 선명해질 수 있다. 교회는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물질문명에서 결코 체험할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교회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영적인 지식과 이해를 상업영화에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보는’(욜2:28) 교회를 세상은 찾고 있다. 새해에는 성령의 역사가 교회마다 임하시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