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1-26(수)
 

홍융희 목사.jpg


생각해보면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회에 처음 나간 이후로 항상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너무도 당연하게 매일같이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가방을 던져놓고 교회 선배들과 어울려서 놀았습니다. 그때는 찬양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고 기도회도 놀이나 다름없이 즐거웠습니다. 형들에게 기타 코드를 배우고 누나들에게 어깨너머 배운 피아노를 뚱땅거리면서 놀다가 어떤 때는 혼자 작곡을 해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배가 고프면 교회 식당에서 남은 찬밥을 꺼내서 먹고, 운 좋은 날에는 계란을 득템하여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학생회 임원을 하고 문학의 밤이나 수련회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들을 맡게 되었습습니다. 그러면서 성극 대본도 쓰고 연출과 연기도 하고 교회에서 성경암송대회, 성경퀴즈대회를 하면 당연히 대표로 나가곤 했습니다. 노회에서 중고등부 찬양대회나 중창대회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연습해서 출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숨겨진 재능도 발견했습니다. 학교에서 알 수 없었던 재능을 교회활동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성극 대본을 쓰느라 제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때 찬양을 좋아하던 친구는 지금도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하고 있고, 인간관계가 좋던 친구는 지금도 영업일을 하며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 친구들은 각자 그때 발견한 재능으로 다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꿈을 찾은 것입니다.

 

 지금도 저에게 요한복음 15장은 특별한 말씀입니다. 초등학교 때 성경암송 대회에 나가서 외웠던 말씀입니다. 늘 일하시느라 퇴근 후 밤이면 다리가 아프시던 어머니 종아리를 두드려 드리면서 말씀을 외우던 그 시절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다 교회 행사 있으면 나가서 자연스럽게 현수막 걸고 포스터 붙이고 토요일이면 교회 사무실에 주보 나오면 주보 접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의 친구들은 우리를 농담삼아 ‘교숙자’라고 불렀습니다. 교회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교숙자들이 다 같이 옹기종기 앉아서 누가 주보 예쁘게 빨리 접나 내기하며 시간을 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집처럼 여기던 제게 매주 수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수요예배는 당연히 참여해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제게 그때 담임 목사님의 수요 성경 강해설교가 다 이해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돌아보면 그 딱딱한 교리 설교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몰랐는데 계속 교안을 받아 적으면서 매주 듣다보니까 말씀하시는 내용이 조금씩 이해가 되고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궁금해지고 성경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성경을 학교 갈 때도 가져가서 쉬는 시간마다 꺼내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제 별명이 ‘성경 읽는 아이’였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반에 새로 전학 온 친구가 새로 나갈 교회를 찾다가 학교에서 성경 읽는 제 모습을 보고 너희 교회 가고 싶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전도까지 한 일화도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학교 공부보다 성경이 더 재미있고 성경이 계속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수요일에 교회에 가서 수요예배 시간에 담임목사님 강해 중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으면서 말씀 해석의 원리를 배우고 나름대로 적용해보면서 막힌 부분을 풀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수요예배를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매주 개근을 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수요예배 설교를 준비할 때면 본당 뒤편에 혼자 앉아있던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을 떠올립니다. 교회를 말씀으로 세워가는 저의 바탕이 되어준 그 시절의 제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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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교회에서 자란 아이가 교회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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