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급하게 마트에 갔는데 수육용 앞다리살 고기를 싸게 팔고 있었다. 고기 파시는 분께 “수육용이 엄청 싸네요? 지금 행사하는가 봐요”라고 물으니, “김장철이잖아요. 수육 많이 해먹으니까...”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듣고 날짜를 확인하니 벌써12월 1일이다. ‘벌써 12월이네, 우리도 김장해야 하는데...’매년 11월 말이 되면 12월 초에 있을 김장으로 절인 배추, 고춧가루, 액젓 등을 주문한다고 정신이 없는데 어찌 이번에는 뭔가 허전하게 지난다 싶었다. 우리는 식사 때 김치 빠지는 일이 없어 20-30 포기 정도 김장을 하면 일년동안 그럭저럭 먹는 편이라 겨울에는 꼭 김장을 해야만 하는데 올해는 아직 이러고 있다.
수육을 해서 애들 저녁으로 주니, 역시나 4학년 둘째가 “엄마, 금방 한 김치는없어요” “금방 만든 김치랑 먹으면 더 맛있는데...” 이런다. 수육과 김장김치의 어울림을 아는 것은 소소한 일상의 큰 행복이다. 이 뿐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향이 좋은 드립커피와 갓 데운 빵을 먹는 것, 늦은 밤 책을 보며 맛있는 군고구마와 묵은 김치를 먹는 것도 일상의 즐거움이다.
우리 인생의 행복이 저 어디 우주를 정복하거나, 하늘의 별을 따서 생기는 것도 있겠지만, 지나치기 쉬운 삶의 언저리, 일상에서 얻어지는 행복의 맛이 소소한 즐거움을 주고, 이 즐거움이 곧 삶의 영양분이 된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더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보면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 당장 내가 아이들에게 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뺏기며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즐거움을 찾으면 나도 아이도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연예인들의 육아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교하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니 나도 마음이 편해지고 아이들도 편안해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다.
“엄마, 그런데 겨울인데 우리 김치 안해요” 수육을 한창 먹다 둘째가 김치 담그자 한다. 2022년 식탁 반찬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향긋한 굴과 도톰한 수육을 또 먹기 위해 조만간 김장을 해야겠다. 내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