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1-2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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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대하는 태도가 믿음을 결정한다

현대영화에서 기독교 영화와 세속적인 영화를 결정짓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상실(喪失)에 대응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건강과 재산을 잃어버린 상황이 전개된다면 세속적인 영화는 욥의 아내처럼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라는 식의 분노로 화면을 채우기 십상이다. 그러나 기독교 영화라면 욥이 말한 것처럼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는 주인공의 고백과 함께 상실과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의지를 화면 가득 펼칠 것이다.

 그런데 건강과 재산 정도가 아니라 부모나 자식, 형제를 불의한 자들의 손에 의해 잃어버린다면 어떨까? 드라마의 대중적 인기 요소가 ‘갈등’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영화는 주인공의 갈등이 크면 클수록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 주인공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모는 경향이 있다.

 이때 기독교 영화가 아닌 세속적인 영화라면 갈등은 분노와 더불어 복수로 이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복수는 대중영화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인기있는 방법이다. 관객은 복수를 보여주는 영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영화 제작자는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아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 관객이나 제작자 모두 복수극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 특히 복수극에 자주 나타나는 폭력성에 대해서도 윤리적 비판을 비켜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액션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복수는 정의로운 심판으로 위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복수의 가장 큰 위험성은 그것이 ‘인간다운 행동’으로 인식되거나 예술의 차원에서 미학의 한 부류로 취급될 때 일어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소위 말하는 ‘복수 3부극’은 인간다운 행동으로서의 복수를 묘사한 영화들이다. <복수는 나의 것>(2001)과 <올드 보이>(2003)에 이어서 <친절한 금자씨>(2005)에 오면 복수는 그 잔인성이 사회의 규범적 가치를 초월하여 영혼에 대한 속죄의 방법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복수가 인간의 가장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아이들을 유괴 살인한 백선생(최민식)에 대한 집단적 복수 살해 장면은 종교의례를 방불케 한다. 그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의 폐교의 한 교실 한가운데 백선생을 묶어 놓고 한사람씩 차례대로 잔인한 보복행위를 가한다. 피가 튀지 않도록 우비를 입고 연장을 손에 들고 살해방법에 대한 절차와 방법을 의논하고 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신의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예식행위를 연상시킨다. 죽은 아이들을 위한 속죄 행위로서 벌이는 백선생에 대한 복수는 이미 보복살인이 인간적인 행동으로 정당화하는 수준을 넘어 경건한 예식을 통한 예술적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비나 웜브란트는 달랐다

<사비나: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나치시대>(Sabina: Tortured for Christ, the Nazi Years , 2021)는 루마니아의 공산정권에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다 14년간이나 옥살이를 했던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와 그의 아내 사비나 웜브란트의 사랑과 용서를 그린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의 전반부는 유대인이었던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기독교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었다. 마르크스의 책을 가까이했었던 남편 웜브란트는 결핵에 걸려 요양생활을 하던 중 성경을 접하고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다. 유대교와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는 점에서 웜브란트의 회심은 진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겪게 될 고난과 순교적 신앙을 예고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영화의 후반부는 루마니아를 점령하며 유대인 사냥에 나섰던 독일군이 소련군에 의해 퇴각당하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있다. 숨은 유대인을 찾아 나섰던 독일군은 상황이 역전되어 유대인이었던 웜브란트 목사 부부의 도움으로 소련군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을 찾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사비나 웜브란트(Raluka Botez)와 유대인 도살자로 불리며 사비나의 가족을 학살한 당사자 보릴라(Gabriel Costin)와의 만남에 있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던 사비나는 남편으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학살한 바로 그 독일군이 소련군의 눈을 피해 자신의 집 거실에 있음을 듣게 된다.

 학살자를 눈앞에서 마주한 사비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분노와 복수의 마음이 머리끝까지 올랐을 것 같지만 영화는 그 반대의 장면을 보여준다. 사비나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학살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복음의 핵심이 용서임을 말한다. “복음의 핵심은 용서입니다. 제가 용서받은 것처럼, 당신도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 용서해주실 거에요.” 그리고 배고픈 그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한 장면처럼 느껴져야 하지만 낯설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대중영화 속 복수의 논리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사비나 웜브란트는 철저히 성경적인 사람이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25:21-22)는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 않은가!

 사비나 웜브란트는 예수님이 가르쳐 준 용서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분노와 복수가 넘쳐나는 영화세상에 기독교 영화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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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브란트와 ‘순교자의 소리’

<사비나: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나치시대>는 교회가 주목할 만한 매우 특별한 제작과정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제작 수순을 밟지 않고 <순교자의 소리>라는 선교단체의 후원 속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 전문 영화연출자와 교회 혹은 선교기관이 특별한 목적을 두고 극장용 영화제작에 나서는 선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고 스태프들을 통솔한 존 그루터스(John Grooters)감독은 ‘순교자의 소리’와 깊은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지속적인 영화제작에 나선 사람이다. <사비나: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나치시대>를 제작하기 직전에는 웜브란트 목사의 고난과 신앙을 주제로 한 책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Tortured for Christ)을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공산치하의 루마니아에서 핍박받는 웜브란트 목사와 동료 그리스도인이 고난받는 충격적인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고, 한국의 경우 2020년 부활절을 앞두고 유튜브로 공개되어 2만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을 한 기록을 갖고 있다. 또한 2019년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북중접경지대에서 선교활동 하다 북한에서 순교한 한충렬 목사와 그의 영향으로 예수를 믿게 된 북한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영화 <상철:북한>(Sang-chul: North Korea, 2019)을 제작하기도 했다. 모두 제작을 지원한 선교단체의 특성을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순교자의 소리(The Voice of the Martyrs)’는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Richard Wurmbrand, 1909~2001)가 공산주의 국가의 지하교회를 돕기 위해 설립한 선교단체로 출발하여 현재는 전세계 70여개국에서 핍박받는 그리스도인을 돕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풍선에 성경책을 담아 북한으로 날려 보내는 운동을 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다.

 ‘순교자의 소리’는 웜브란트 목사 부부의 순교적 신앙을 한국교회에 전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여기서 ‘순교적 신앙’이란 자신의 가족을 학살하거나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을 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만일 정부나 권력기관과의 갈등이 빚어진다면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옥고를 치러야 했고,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들은 순교로서 신앙을 지키기도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지만, 차별금지법 문제나 대북선교, 코로나 시대의 예배의 자유 등 세속적 정부나 권력기관과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어서 순교적 신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웜브란트 목사 부부는 예수님이 가르쳐 준 용서를 실천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분열과 갈등이 넘쳐나는 시기에 이 영화를 우리가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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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복수의 세상에서 용서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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