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2-08(수)
 

홍석진 목사.jpg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는 여전히 유효한 듯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기울이는 관심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정치는 때로 세계적인 이슈나 국제적인 약속을 초월할 때도 있습니다. 최근 새롭게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포기하면서까지 국내 조기 총선(중의원 선거)을 선택한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뭐니 해도 근래 최대 관심사 또한 내년 있을 대선을 앞두고 각각 선출된 여당과 야당의 두 후보에 관한 기사들일 것입니다. 한국은 양당제 국가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여당’과 ‘야당’ 혹은 ‘여야(與野)’라는 단어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며 최소한 대선 기간에서만큼은 실질적 양당제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상태가 되지 않았습니까? 전례를 보아할 때,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현재 여당과 야당의 두 후보 중 한 명이 차기 대통령이 되리라 봅니다. 그러니 후보들을 앞두고 무성한 말잔치에 얘깃거리들이 풍성합니다.

 

 공교롭게도 두 후보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습니다. 첫째,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정치권에서 그 이름을 찾을 길이 없었던,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 신인이라는 면에서 닮았습니다. 대통령제의 모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케네디나 클린턴이 같은 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좋든 싫든 미국사회가 체험했던 신선한 변화가 과연 우리나라에도 일어날지 궁금합니다. 둘째, 두 후보 모두 가정사(家庭事)의 문제를 지적당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닮았습니다. 여당의 후보는 부모형제와의 관계에 있어서, 야당의 후보는 처가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대로 대선이 끝난다면 적어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상징하는 동양적 국가지도자의 덕목 하나가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할 지도 모릅니다. 셋째, 유독 ‘설화(舌禍)’의 주인공들이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여당의 후보는 거침없고 과격한 발언으로 원래 유명했고, 야당의 후보는 자체 경선 과정에서 말(言)과 관련해 수많은 논란거리들을 양산하고 다녔습니다.

  

 그밖에도 두 후보는 기이하리만치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지 않은 닮음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정치적 의제(agenda)를 압도하고 있는 소위 ‘대장동사건’이나 ‘고발사주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니 벌써부터 ‘찍을 사람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시민들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고, 심지어 후보들을 비하하는 ‘놈놈놈’이란 말까지 들려오는 실정입니다(한국일보, 이태규). 그렇다고 다들 투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작년 4.15 총선 직전 당시 사실상 미래통합당 수도권 선대위원장 역할을 하던 유승민 의원은 어느 지역구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역설적으로 지금 의미심장해진 말을 남겼습니다. “최악이 아니라면 차악,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선택해 달라.” 사실은 새로운 표현도 아닙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덜 나쁜 악이 더 큰 악보다 선호가 크고, 선호가 크다는 것은 좋은 것이므로, 덜 나쁜 악은 더 큰 악과 비교할 때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다”라는 명구(?)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태도를 견지해야 하겠습니까? 첫 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더욱 민주시민으로서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남녀와 인종과 재산의 구별 없이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이 인정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의 눈물과 기도와 희생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로 누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타인의 양심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이번 언제든지 여당 후보 지지자도, 야당 후보 지지자도, 제3정당의 후보 지지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교회의 강단은 결코 설교자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표방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로 온갖 구설수와 의혹이 아니라 후보들이 제시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약속과 비전을 고려해서 투표하고, 그렇게 해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그 약속과 비전을 반드시 지키고 이루어가게 해달라고 영원한 대통령이신 주께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 주여. 제게 대한민국을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소서.” 존 녹스(John Knox, 1514-1572.11.24.)의 마음이 후보자들에게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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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두 후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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