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2-08(수)
 

전영헌 목사(N).jpg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대패했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의 전쟁은 단순히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과 장로들이 모여 ‘우리가 왜 전쟁에서 패했을까?’에 대하여 의논했다. 전략 회의를 한 것이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의견이 모아졌다.

“전쟁터에 ‘언약궤’를 가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패한 것이 틀림없어.”

어디서 들은 풍월인지 그들은 ‘언약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냈다.

“언약궤를 가져가서 복수하자!”

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셨던 것은 ‘언약궤’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붙드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필요했던 것은 ‘언약궤’가 아니라 ‘회개, 돌이킴’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언약궤’에 집중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갔지만 그들의 앞에 닥친 것은 더 큰 패배였다. 결국 삼만 명이 전사했고, 언약궤는 빼앗겼으며,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음을 당했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일 뿐, 하나님 그 자체는 아니다. 하나님은 일정한 공간이나 특정한 조건에 제한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런데 수많은 학부모들은 하나님보다는 ‘언약궤’에 관심을 두고 사는 것 같다. 하나님을 붙들려고 하지 않고, ‘언약궤’의 한 부분이라도 잡아 보려고 애쓰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신앙생활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많다. 교회의 수련회에는 절대로 아이들을 보내지 않는 부모들도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병든 세상에서 붙들고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무기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은 뒤로 미루어 놓은 채, 영험한 것처럼 보이는 ‘언약궤’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평상시 기도하지 않던 부모들도, 자녀들이 고3만 되면 새벽 기도회에 나타난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면(대학에 합격하면) 몇 년 쉬었다가 취직을 앞둔 시점에 또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또 몇 년 잠잠히 있다가 자녀들이 결혼할 즈음이면 다시 새벽에 얼굴을 보인다. 물론 이렇게라도 기도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는 기복祈福 신앙이며 더 심하게 말하면 부적符籍 신앙이다. 하나님을 붙들고 산다고 하는 것은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인데, 앞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들이 오히려 길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우리가 ‘언약궤’에 집중하면 기복을 쫓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집중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보게 된다. ‘언약궤’가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전심으로 하나님만 섬겨야만 한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몫이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좋은 학원, 좋은 과외 선생을 찾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가 어떻게 하면 병든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믿음을 지키는 리더로 살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있는 가정의 믿음 없음’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는 자녀의 학교다. 그래서 자녀들은 본 대로 한다. 그러니 ‘언약궤’를 붙들지 말자. 하나님만을 붙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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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법궤가 아니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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