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2-08(수)
 

김태영 목사.jpg

 근대로 넘어오기 전에 서양에서는 신분제도가 있었고 마차가 교통수단이었다. 말이 끄는 마차에도 1등석부터 3등석까지 있던 시절이다. 지금도 비행기를 타면 퍼스트 클래스석, 비즈니스석, 이코노미석이 있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달리던 마차가 고장 나거나 진흙탕에 빠지면 3등석 사람은 내려서 마부와 함께 마차를 끌어내고, 2등석은 내려서 지켜보고, 1등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고 한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황당하다 못해서 갑질로 비난을 받을 일이다. 사회에서 명망 있고 직장에서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곧 인격의 크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인격은 계급과는 상관없다. 교회에서도 목사, 장로, 노회장, 총회장이 되면 신앙의 깊이가 깊을까? 그럴 수도 있으나 나의 경험으로는 집사님 중에 본 받을만한 한결같은 신앙으로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많다. 직분과 신앙이 비례되는 것은 아니다.

 

 산상 보훈 중에 ‘세상의 소금과 빛’에 대한 교훈은 교회는 교회로서, 기독인은 기독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소금의 기능이란 아주 간단하다. 짠 맛을 내는 것이다. 그 맛을 잃으면 버려지게 된다. 소금다움이란 짠 맛으로서의 역할을 의미한다. 설탕 없이도 밥 먹을 수 있지만 소금 없이는 밥 먹기가 힘들다. 간이 안 되어 있으니 무슨 맛이 있겠는가. 소금이라도 자연산 천일염과 맛소금은 다르다. ‘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맛소금은 인공조미료(MSG)를 배합하여 감칠맛까지 더하여 음식점 요리에 많이 사용되었지만 요즘은 건강을 따지다보니 맛소금은 외면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자연산이 대세다.

 

 교회 강단의 설교자들은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고 기도해서 자연산 천일염을 공급하려고 힘을 써야 하는데 성도들의 입맛을 맞추려고 온갖 MSG를 첨가해서 성공, 소원성취, 믿습니까, 아멘 유도 발언등 기복이 섞여서 말씀의 원래 의미(맛)는 사라지고 강단이 세속화되어 만담과 농담을 늘여놓는다면 어디에서 교회와 성도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 강단이 영적 성숙은 커녕 미숙자를 양산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하자.

 

 어릴 적 여름 방학 때는 한 밤중에 어디를 가든지 반딧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나 여기 있소!’ 하고 존재감으로 반짝였다. 요즘은 세상이 워낙 밝으니 그 반딧불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어라’고 하셨는데 등대와 등불은 못되더라도 반딧불 정도라도 비추어야 할 텐데 혹시 반딧불 빛마저 잃고 어둠에 어둠을 보태지는 않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희미하나마 작은 빛이 기독인의 존재감이다.

 

 신앙의 연수를 자랑하는 만큼 신앙의 깊이가 있는지를 돌아보자. 중직과 요직이라는 직분에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만큼 인격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지 성찰하자. 소금과 빛의 정체성을 지니고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천일염 소금과 반딧불 빛이 되는 삶을 살아가자. 별 빛을 따라 페르시아에서 베들레헴 마구간까지 인도함을 받은 동방박사들을 생각하는 성탄 계절이 다가왔다. 새벽별이신 주님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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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목사] 인격의 크기와 신앙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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