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2-08(수)
 

최현범 목사.jpg

이전에 쾰른에 있는 한 한인교회에서 큰 행사가 있어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교회 역시 아주 오래된 독일교회당을 빌려서 쓰고 있었기에 함께 간 분들이 교회 구경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뒷마당으로 갔더니 좀 역한 냄새가 났다. 무슨 냄새인가 물으니 친교실 지하에 몇 분의 난민들이 기거하고 있는데, 그들이 자기나라 음식을 만들다보니 자주 나는 냄새라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은 독일의 많은 교회들이 난민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엄격한 정부당국에서 난민 허락이 나지 않음으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교회 안에 숨겨주는 난민들도 있었다. 아무나 그런 것은 아니고, 교회가 오랫동안 상담하고 관찰하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되는 난민이라 확신한 경우이다. 당국의 강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쉽게 내주지 않음으로 인해 국가와 교회 간에 난민으로 인해 종종 긴장관계가 만들어진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독일 목사와 인사를 하면서 우스갯소리로 당신 독일인들은 깨끔한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냄새가 역겹지 않냐고 하니, 정색을 하면서 아무 문제없다고 했다. 이처럼 난민을 보호해 주는 일은 우선 이런 의식이 있는 목사들이 앞장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독일교회에서 교인들의 동의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교인들 중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는 교인들 중에는 이것을 동의하고 뒷받침해주는 이들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독일교회는 이런 난민 뿐 아니라, 외국인이나 소외된 이웃들의 문제와 관련해 꾸준히 설교하고 교육할 뿐 아니라, 이와 연관된 행사를 적극 개최함으로 교인들의 사고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나의 논문을 지도해주신 링크(C. Link)교수 부부도 교회에서 이런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분들이었다. 이들은 아직 거처지를 구하지 못한 아프리카 난민가족을 자기 집 지하에 데리고 살기도 했다. 종교개혁 499주년 때에 나를 포함해 교수님의 제자들이 그를 한국으로 모셨다. 서울에서 여러 차례 세미나를 갖고 부산에도 내려와 우리 교회에서 주일예배 설교를 했다.

본래는 교수님 부부를 초청했는데, 사모님이 당시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이 많아 그들 돌보기 바쁘다면서 정중히 거절하셨다. 이전에 한번 방문했던 우리나라를 그리워하며 아직 건강할 때에 꼭 다시 오고 싶어 했던 사모님은, 난민들 돌볼 손이 부족하다며 그들 곁에 있기로 한 것이다. 이런 소개의 말에 우리 교인들은 감동하였고, 사회선교위원회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난민 돕는 일에 동참하겠다면서 교수님에게 100만원을 전달했다. 교수님은 감격해서 받아가셨고, 이것을 그 도시의 난민단체에 전달해서 난민 지위 취득에 필요한 변호사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교수님은 이 사실을 자기교회에 자랑했더니 이 말에 감동한 몇몇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했다는 소식도 전해주셨다. 지난 2019년에 교수님댁을 방문했을 때에도 두 부부는 거듭 그 일에 사례했고, 지금도 교회에서 매주일 오후에 난민을 위한 카페를 열고 있는데, 그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개신교회는 점점 신앙적인 열정을 잃고 늙어가는 것이 분명하나,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가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며 살려고 하는 자들을 많이 갖고 있다. 그로 인해 교회는 여전히 독일 사회에서 신망을 얻고 있고, 보이지 않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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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난민의 나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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