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9(월)
 

전영헌 목사(N).jpg

제자녀석에게서 D.M(문자)이 왔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절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술 한 잔 하다가 예전에 이삭교회 수련회에 따라 갔다가 목사님이 제 발을 씻어준 게 기억이 나서 갑자기 연락을 드립니다. 저는 불교신자라서 예수님은 아직 믿지 않지만 목사님은 믿습니다.”

 

하나만 더 소개하고자 한다.

 

“목사님 oo입니다. 친구랑 싸우고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트려서 손에서 피가 날 때 내 손을 잡고 유리 조각 하나 하나 빼주신 것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학교를 생각하니 그때 일이 떠올라 소식 드립니다. 성공해서 찾아뵙겠습니다.”

 

학교에서 수많은 제자들이 지나갔다. 큰 사고를 쳐서 기억나는 제자부터, 존재감 없이 아주 착하게 성실하게 지나간 제자들까지 여러 부류의 제자들이 지나갔다. 수많은 제자들이 세상을 흘러가는 중에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오는 제자들은 여러 사건 사고 속에서 함께 했던 제자들이 상당수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순간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곳은 문제학생들을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 문제학생들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이런 녀석들이 더 손에 잡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의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밥 먹고, 함께 욕하고, 함께 공도 차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그냥 이 녀석들이 좋아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냥 좋아해서 했던 그 시간이 훗날 녀석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답을 주곤 한다.

결국 살아있는 교육은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보여주는 교육이 가장 힘 있는 교육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깨닫곤 한다.

생명 있는 교사로,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때 그 순간 같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도 안다. 자기들이 지금 온전한 모습인지 아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때 먼저 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과 함께 해주는 것이다.

한 번은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당 뒷문이 슥 열리더니 우리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 하나가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걷는 것이 조금 수상했다. 교복을 입고 술 한 잔을 하고 비틀거리면서 예배당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얼른 제자놈을 부축해서 내 옆에 앉혔다. 그리고 곧 데리고 나가서 혼내 주려고 하는데 앞자리에 앉아 있는 권사님이 자꾸 뒤를 돌아보며 눈치를 주면서 얼른 데리고 나가라는 사인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데리고 나가려다가 그냥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그냥 재워 버린 후 예배가 다 마치고 데리고 나왔다. 물론 제자 녀석은 나한테 엄청 혼났다.

그날 제자 녀석을 끝까지 안고 있었던 것은 교회는 멀쩡한 사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제자놈처럼 비행을 일삼고, 사고를 치는 녀석도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아이들을 배척하려 한다. 그리고 그때 배척받은 아이들은 교회를 영원히 떠나게 된다. 이때 내가 안고 있었던 그 제자 녀석은 지금 훌륭한 교회의 리더로 자라 있다. 이 녀석도 같은 말을 한다.

“목사님이 그때 나 안고 있는 바람에 내가 지금 여기 있게 된 겁니다”

그렇다. 다음세대 아이들은 하나님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그래서 무엇을 하기 전에, 보이는 우리가 먼저 신자됨을 보여야 한다. 아이들이 하나님보다 먼저 여러분을 믿게 하라. 거기에서 복음은 시작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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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칼럼]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목사님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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