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8(목)
 

2006년 일본 오사카행 특급열차 안에서 한 치한이 옆 자리에 앉은 20대 여성을 성추행하다가 화장실에 끌고 가 30분 간 성폭행을 했다. 그런데 이 차량에 함께 있던 40여 명의 승객은 울면서 끌려가는 여성을 뻔히 보고서도 “뭘 쳐다보고 있어!”라는 치한의 고함소리에 위협을 느끼며 제지는커녕 승무원에게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사회 일각에서 불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로 인하여 억울한 희생자가 생겨도 그건 나와 무관하다면서 침묵하든지, 몸을 사리는 보신주의로 흘러가기 쉽다. 인권운동가 스탠리 코언은 세상에서 인권 침해와 그 고통의 더욱 늘어나는 이유는 불의한 가해자뿐 아니라 방관자의 완고한 ‘부인’의 태도가 함께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독일인들 속에서 이런 부분에서의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느꼈다. 어쩌면 과거 불의한 권력에 맹종하면서 그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웃에게 무관심한 결과, 말로 다할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한 역사가 준 교육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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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지금 교통사고가 나면 양쪽 보험회사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것이 일반화되어있지만 과거에는 양쪽 차주들이 나와 서로 옳거니 그르거니 하면서 싸우기 일쑤였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통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주변에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이라 해도 괜히 끼어들어 낭패를 보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는 것이 싫어 말없이 지나쳐갔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이런 경우 목격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시비비를 가려 주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재판으로 가는 경우는 증인으로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인의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은, 억울하게 손해를 입는 일이 옳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별히 약자가 억울한 상황에 처할 경우에 더더욱 나서려고 하는 시민의식이 강하다.

 

우리 교회의 전도사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한번은 주차를 하다가 앞에 서있는 차에 접촉사고를 내었다. 그러자 그가 독일어에 서툰 외국인인 것을 안 차 주인이 이것을 기회로 삼아서 한몫 잡을 심산으로 이전에 찌그러지고 흠이 난 곳을 가리키며 이게 다 당신 잘못이니 당신이 물어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말이 짧아 반박하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는데 마침 그곳에 지나가던 할머니가 나서서 차 주인에게 따졌다. ‘내가 다 봤는데, 이 젊은이가 흠집 낸 것은 여기 한 곳 뿐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외국인이라고 해서 덤터기 씌우려는 거냐? 재판하면 내가 이 사람의 증인을 서주겠다’ 이 말에 차 주인은 기가 죽어서 접촉사고로 흠집 난 부분만을 보상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그 할머니가 세웠던 자전거가 넘어져서 전도사의 차에 부딪히며 미세한 상처를 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 잘못이니 보상하겠다며 돈을 주려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간신히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사회의 정의가 데모나 선거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옳은 것을 위해서라면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시민의식이 그 사회를 보다 정의롭게 세워나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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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정의를 위한 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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