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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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with(위드)는 ‘함께’ 라는 의미입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리면, 감기처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코로나의 좋은 점 혹은 나쁜 점들을 다 가지고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요.

우리는 흔히 with(위드) ‘함께’ 간다고 할 때, 좋은 것만 함께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인생을 살다보면 좋은 점과 더불어 나쁜 점 또한 함께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 ‘질병’과 함께 살아가고, 자녀와 함께 살다 보면 즐거운 점도 있지만 힘든 점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한쪽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양쪽을 다 가지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인생은 이런 모든 면을 안고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는 것을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능력’을 삼손처럼 힘이 강한 이미지,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성공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성경에 나오는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서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하면서 능력은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를 생각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위드’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아마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단연 ‘위드 세상’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함께 살아가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살면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는 존재, 바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정체성입니다. 어떤 무리들은 “세상이 너무 타락해서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어. 우리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어 그곳에서 깨끗한 공동체를 세워나가자”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기독교 사상과 배치되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꿈꿔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위드 패밀리’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가족이라는 선택할 수 없는 공동체 속에 묶였습니다. 사춘기 자녀들도, 그 모습을 안고 함께 살아야 하고, 반면에 부모의 약한 점이 보이더라도 함께 살아야 합니다. 가족 안에서 사회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인내, 헌신, 양보’ 등의 가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위드 공동체’입니다. 학교, 교회, 친구들 집단 등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떨어져서 살 수가 없습니다. 공동체에 함께 있다 보면 좋은 점도 있지만 약점도 드러나고, 개인이 참고 인내해야 할 순간도 있습니다. 내가 싫다고 무작정 공동체를 떠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함께 성숙해 나갈 때 사랑과 인내의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보면 여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잎의 색이 변하며 곧 시들해집니다. 겨울에는 이 시들해진 잎이 떨어져 곧 나무가 죽을 것만 같지만 봄이 되면 이내 새순이 피고 다시 새 잎이 풍성하게 영글어 갑니다. 나무의 사계와 동일하게 ‘함께’ 한다는 것은 이 시간을 보내며 인내하고 기다리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풍성한 나무의 열매만을 보고 그 열매 뒤에 감추어진 나무의 오랜 인내의 시간은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의미를 알고 버려지는 시간이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며 열매를 기다립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먼저, 세상이 교회를 볼 때 ‘다름’이 없으면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합니다. 백신이 없던 지난해 코로나 감염이 두려움으로 밀려올 때, 세상 사람이나 그리스도인이나 똑같이 두려워하고 겁내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육체는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감염을 조심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감염 자체에 함몰되어 일상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조심하되 두려워말고,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않되 당당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함께 어우르며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가 열리며 뒤따라 온 것은 ‘분열’이었습니다. 공적 마스크 공급부터 시작해, 거리두기 단계 조절, 백신 수급 문제 등 주요 사항이 있을 때마다 정치권을 비롯한 국민들의 의견이 갈라졌습니다. 물론 의견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포용하는 수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흑백논리로 나뉘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아우르며 더 나은 제3의 해결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코로나 시대에 ‘함께’의 과정을 거치며 생각이 넓고 깊어지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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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위드 코로나 – 기다림과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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