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8(목)
 

김희정 대표.jpg

“엄마, 은샘이 이제는 도저히 안되겠어요. 혼을 내거나 벌을 세워야겠어요”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막내라고 자꾸 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마음대로 하잖아요”

맞다. 둘째가 하는 말이 다 맞다. 내가 막내라고 많이 봐준다는 둘째의 항의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보니 태어난 순서도, 말하는 방법도, 하는 행동도 각각 다른 아이들을 향한 나의 사랑의 모양도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한다. 가령, 첫째는 보고만 있어도 확실히 듬직하고 편안한 마음이 생긴다. 바쁜 아빠를 대신해 어렸을 때부터 엄마 일을 곧잘 도왔을뿐만 아니라 동생들을 돌보는 것도 늘 첫째 몫이었고, 중학생이 될 때까지 큰 사고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도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둘째는 딸이라 그런지 옆에만 있어도 흐뭇하다. 물론 딸이라 감정을 읽어줘야 하고, 가능하면 부드럽고 다정하게 말을 전달해야 하는 부담감이 항상 있지만 이런 것만 제외하고는 둘째라서 자기 일 알아서 하고, 엄마 마음 잘 공감해줘서 참 흐뭇하다 .

셋째는 재미있다. 위로는 형과 누나, 아래로는 동생이 있어 단독적인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셋째는 그래서 그런지 볼 때마다 재미있다. 재미있는 표정, 말투를 잘 지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자기 출생 상의 서열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가 아직 재미있고 유쾌하다. 집에서 게임을 할 때보면 가장 치열하고 승부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셋째 특유의 재미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의 넷째가 이제 등장한다. 넷째는 그냥 넷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막내, 그냥 옆에서 살아 숨쉬기만 해도 듬직하고 흐뭇하고 재미있고 심지어 살아있는 인형같은 존재이다.

내 기억에 넷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몸을 꼿꼿이 세운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허리를 반쯤 구부린 C자를 만들어 엄마에게 애교를 피우고, 울 때도 눈과 입은 웃고 있는데 슬픈 소리를 내는 것처럼 운다. 이렇게 세상 귀여움을 다 갖고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인 내가 자꾸 봐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심지어 나는 애교라고는 전혀 없는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장녀이기에 나와 전혀 다른 막내를 보면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각기 다른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모양은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래도 기본적인 사랑의 크기를 비슷하다. 첫째는 첫째대로 또 막내는 막내대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 다르다보니 특히 자기들 나름대로의 형제 내에서 서열도 있다보니 엄마인 내가 그 부분들을 민감하게 잘 다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힘겨울 때가 많다.

 

첫째는 듬직한 대신 첫째라는 마음의 부담감을 갖고 있고, 둘째는 형제 중 유일한 딸이라 형제 중에서 정서적으로 소외되지 않아야 하고, 셋째는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여유를 가지며 생활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막내는 사랑과 집중을 이용하지 말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잘 키워야하는 엄마의 책임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육아는 과학적이며 사회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즉,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부분들을 살피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어떤 일보다 더 많은 이론적인 공부가 필요하고 실제적인 경험이 있어야 하며 영적으로 기도와 은혜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요즘, 막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질타하는 나머지 아이들의 이유 있는 항변을 생각하며 나의 육아에 대해 반성하며 다시 힘을 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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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다양한 아이들을 위한 맞춤 양육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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