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함께 학교에서 성경 시간 강사로 섬기던 후배 전도사가 반찬통을 가득 채워 가지고 출근을 했다. ‘뭐냐’고 물었더니 L에게 줄 반찬이라는 것이다. 집에 부모님들이 다 안 계신 상황에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데 반찬 만드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L과 좀 가까워진 다음에 집안 사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들어보니 많이 어려웠다. 할아버지의 부도로 모든 빚이 아버지에게 넘어와서 아버지의 월급이 차압을 당해 생활비를 거의 주지 못하신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벌어지자 어머니는 이혼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살고 계시고, 자신은 동생들을 데리고 살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직장일로 집에 가끔 들어오시다 보니 동생들을 돌봐야 하고 밥을 챙겨 줘야 하는데 반찬을 준비해서 밥을 해먹이고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했다.
18살의 나이에, 학교에서 마음껏 뛰어야 할 남학생이 집에 가서 동생들 반찬해 줄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라.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서 학교 급식 도우미를 하며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L은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를 않았다.
‘목사님 해뜰날 있겠죠? 제가 빨리 자라서 동생들 잘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매월 내가 쓸 돈을 아껴서 용돈을 전해 주었다. 그렇게 L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찾아서 전문대학에 진학을 했다.
몇 해 만에 L이 나타났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나타났다. 하고 싶어 한 요리 분야에 취직해서 셰프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용기 잃지 않도록 힘을 주어 고맙다며 취직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
“목사님, 첫 월급입니다. 목사님이 필요한데 사용해 주십시오. 조건이 있습니다. 목사님만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애들 돕거나 간식 사는데 사용하지 말고 목사님만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받았던 사랑에 비하면 많은 금액 아닙니다. 저의 마음이라 생각하시고 첫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을 목사님께 드리겠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봉투를 열어보니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L에게는 큰돈이었다.
“임마, 이거 너무 많다. 너 이거 있으면 동생들한테 좋은 옷에, 맛난 것들 맘껏 사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큰돈을 가져오면 어떻게 하냐?”
“목사님, 저 원래 없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들 있어서 사는데 지장 없습니다. 이제 목사님 걱정하실 정도 아닙니다. 그냥 목사님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리하마. 그리고 고맙다.” 나와 L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L이 준 돈을 나를 위해 쓸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고 싶어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학교 아이들 중 어려운 4명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 조용히 전달해 주었다.
학교에서는 모르는 일이다. L이 전해준 첫 월급 장학금을 받은 아이와 나만 알고 있다. L에게는 알려주고 싶었다.
“L아, 네가 준 돈으로 내가 잘 썼다. 너무 아까워서 그냥 쓰기 아까워서 네 후배들 4명에게 나눠주었다. 너처럼 어려운 애들이 있더라. 그래서 힘내라고 하면서 전해 주었다. 혹시 아냐? 얘들도 나중에 너처럼 그렇게 첫 월급 가져올지..”
학교에서 때로는 나를 보면서 ‘내가 헛짓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가 있다.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 중에 가끔 “목사님, 애들한테 그렇게 해 줄 필요 없습니다. 점마 저것들 은혜 모릅니다”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뭔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아이들을 대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목사로서 해야 할 일이기에, 크리스천으로서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배웠기에 여전히 나는 내 방법대로 살고 싶다.
나는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 은혜를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가 우리 아이들 삶 속으로 흘러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