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3(목)
 

최현범 목사.jpg

독일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자신들의 과거사를 냉철하고 끈질기게 파헤치고, 또 과오에 대해서 처절하게 반성하는 예는 드물 것이다. 어느 나라나 자랑스러운 역사뿐 아니라,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역사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 강대국인 경우 분명 근대사에서 다른 민족을 약탈하고, 이웃 나라들을 괴롭힌 흑역사들이 많이 있다. 때로 양심적인 학자들이 그것을 파헤치고 드러내지만, 국가가 그것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고, 국가 내에서도 서로 상반된 정치이념들로 인해 역사가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

독일은 이점에서 확실히 달랐다. 나치의 유대인학살과 반인륜적인 사건들을 숨기지 않고 낱낱이 파헤쳐서 전시하였고, 이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극우세력이 발을 붙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과거청산의 가장 핵심인 인적청산을 철저히 했다. 전후 수많은 나치전범과 그 동조자들을 찾아내어 재판하였는데,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일은 지속되고 있다. 올해 2월 독일 검찰은 나치 수용소에서 비서로 일했던 여성과 경비원이었던 남성을 기소했는데, 둘의 나이는 각각 94세, 100세였다. 아무리 고령자라해도 재판정에 세울 정도의 건강이면 반드시 세웠고, 수용소에서 직접 학살에 관여하지 않았어도 방조한 책임을 물어 낮은 직급의 관리자·경비원·비서 등도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얼마나 철저히 그리고 집요하게 과거를 청산하려고 하는지 그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

아울러 독일은 국가지도자가 매년 반복되는 홀로코스트나 전쟁 기념일마다 참석하여 사과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이가 바로 빌리 브란트 수상이었다. 동방정책을 통해 동서의 화해를 이루려했던 그는 1970년 폴란드 방문 시 과거 나치가 유대인들을 가두어 살게 했던 게토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해 세운 기념비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그가 결단하고 행한 이 ‘바르샤바에서의 무릎 꿇음’ (Warschauer Kniefall)은 이후 독일의 진정한 참회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러한 뼈아픈 과거청산의 용기와 진정성은 주변국가들 속에서 신뢰를 회복하게 하였고, 이것이 훗날 독일의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통일 이후에도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제, 군사, 외교면에서 다시금 강대국의 지위를 확고하게 누리게 되었다.

이와 대비되는 나라가 스위스이다. 나치가 유대인들로부터 약탈한 금괴를 거래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나치에게 전비를 마련해준 스위스는, 자신들의 과오를 시인하고 참회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면서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스위스의 저술가 아돌프 무쉬그가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지에 이런 글을 썼다. “(과거를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마치 마취가 풀릴 때처럼 먼저 고통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의 허물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올바른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역사적 사실을 시인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는 종종 아픔이 따르지만,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바른 현실로 돌아올 수 있고, 그런 자에게 또한 바른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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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야기]독일의 역사의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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