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7-3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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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에서 한 여성이 쓰러졌는데,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남자들 아무도 선뜻 도와주려 나서지를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반 언론들까지 앞 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고, 요즘 민감한 주제인 ‘페미-반페미 논쟁’으로 격화될 조짐까지 보였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괜히 나섰다가 쓸데없는 오해를 살지도 모르니 그럴 수 있다’는 말부터 ‘남성이 여성을 꼭 도와야 하나’는 의견까지 등장했는가 하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일종의 여혐(女嫌)이다’라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최초 신고자가 “사람이 쓰러졌는데 남녀가 어디 있나요, 남녀 가릴 것 없이 시민들이 쓰러진 분을 도왔습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글을 재차 올려서 웃픈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만, “(선정적인 제목까지 쓰면서) 언론이 더 남녀 분쟁을 키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그의 마지막 언급은 개운치 않는 또 다른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빈발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른바 ‘젠더 갈등(Gender Trouble, Judith Butler)’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여당의 유력한 여성 정치인은 자신을 ‘반페미니스트’라고 비판한 목소리에 대해 “내가 문제 삼은 건 남성 배제적 ‘페미의 극단화’를 경계하는 것이고 독선적이고 혐오적으로 오해 받는 페미 현상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반박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파격적인 ‘30대 기수론’을 현실화시켜버린 야당의 젊은 대표는 일부 당내 대선 주자들이 표방하고 있는 ‘여가부(여성가족부) 폐지론’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갈등 속 폭풍의 눈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상 ‘이대남(20대 남자)’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 그 열광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당권을 장악한 이력 탓인지 당내 안팎으로 다음과 같은 반발이 심상치 않습니다. “당의 내부 견제가 ‘이대녀(20대 여자)’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서울신문 김균미).

 이러한 움직임들과 관련하여 ‘백래시(backlash)’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원래는 나사와 나사 사이에 일부러 만들어 놓은 약간의 틈을 의미합니다. 기어나 톱니바퀴가 진행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흐름을 더 매끄럽게 만들어 주지만, 반대 방향으로 가려하면 오히려 심한 소음과 마모 등으로 흐름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는 공학적 단어입니다. 그런데 1991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Susan Faludi)는 이를 당시 불고 있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대중적 역풍을 상징하는 사회공학적 개념으로 썼습니다. 지금 야당 대표를 비롯한 일부 인사들의 공공연한 반페미적 발언과 태도를 일각에서 ‘백래시 운동’의 일환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는 상기의 과정을 넘어서 이 단어가 갑자기 정치공학적 개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흔히들 거론하는 몇 가지 이론들을 구체적으로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백소영), 이 문제가 더 이상 무시하고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논점이 되었다는 사실만이라도 인지하고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관점을 모색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분야의 고전인『가부장제의 창조』(거다 러너)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이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토기’는 남자가 만들었을까 아니면 여자가 만들었을까 하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아마도 대부분의 생활 토기들은 여인들이 만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성의 공헌들이 은폐되거나 사라지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역사가 정말 오래 되었겠구나”, 이런 견해를 피력합니다. 읽다 보니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도와 준 강도 만난 이웃은 남자였을까요? 여인이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요? 실제 사건이라기보다는 주님께서 사용하신 하나의 비유나 상징이었을 터, 그렇다면 그 이후 역사의 현장에서 숱하게 나타났던 연약한 이웃에는 여성들이 훨씬 더 많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퍼뜩 떠오른 재미있는 단상(斷想)이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이라면 한 마디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워있는 그 사람이 여인인지 확인해 보았습니까?’ 선행도 신중하게,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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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선한 사마리아인이여 여인인지 확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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