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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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열 목사는 부산에서 약 2년간 구호활동을 전개하며 대구 혹은 서울 등지를 순회했는데, 대구에서 시작된 총회신학교 신약학 교수로 일하면서 빈번하게 대구를 방문했다. 그러다가 신학교 교장 감부열 선교사가 안식년을 떠나게 되자 권세열 목사가 교장 서리로 임명되어 대구가 그의 거점이 되었다. 1952년 9월 대구로 이동한 그는 1952년 9월 30일자로 “한국을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쓴 보고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 2년간 여러분들이 보내주셔서 받은 의류품과 식품들은 우리의 한국 친구들에게 가장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우리는 선물을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우리의 한국인 친구들도 충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구호를 요청하고 싶지 않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고, 겨울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울들은 많은 한국인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적어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신학교 사정을 말한 다음 대구와 인근의 20여개 처의 고아원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고, 선교부가 지원하는 모자원과 과부들을 위한 시설에서도 형편은 동일하다고 말하면서 계속적인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금년은 전에 없던 혹한의 추위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루 셀 수없는 많은 가정이 작은 오두막이나 판자집, 천막, 임시 은신처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들은 기아와 궁핍, 기다림으로 지처 있다고 호소했다. 구호품을 접수할 수 있는 주소지로 샌프란시스코의 장로교 선교부(APO 234, San Francisco)와 대구시 남산동 1번지의 장로교선교부를 소개하고 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1953년 5월 22일자 편지에서는 많은 구호품을 보내준 것을 감사하면서, 약 5천개의 구포품 소포를 받아, 고아원과 모자원, 피난민 수용소, 양노원, 약한 교회, 학생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금전적인 지원금으로는 새로운 구호사업을 시작했고, 미국으로부터 보내오는 엄청난 사랑에 감사하다고 했다.

 권세열 선교사의 중요한 사역은 성경구락부 운동, 곧 가난한 아동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운동이었다. 그 결과 1백만 여 명의 저소득의 청소년들을 교육했고, 54개의 성경구락부를 정규중고등학교로 발전시켰고, 100여개 처 교회를 설립하였고, 신학교 교수로 사역하면서 그이 영향으로 200여명의 목사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전쟁 기간 중 한국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여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사역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과 아픔을 보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희망이 있다고 보았다. 휴전이 되고 한 달 후인 1953년 8월에 쓴 선교보고에서 이렇게 썼다. “실로 한국의 현실은 비참함과 파괴, 유린된 전쟁터, 그리고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인하여 어두운 면이 없지 않으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신앙운동인 기독교의 믿음, 소망, 사랑의 밝은 면이 있다” (Yes, There is a dark side to the picture of Korea with its misery and destruction, its devastated battlefields and the threat of communism: but there is also the bright side of Christian faith, and hope, and love in what is one of the most remarkable Christian movements in history).

 이상과 같은 헌신적인 봉사에 대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권세열 선교사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화훈장을 수여한 바 있다. “미합중국 프랜시드 킨슬러. 위는 1928년 이래 대한예수교장로회 파견 선교사로 봉직하는 동안 종교활동을 통하여 우리나라 국민의 심령개발과 교육 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였음은 물론 6.25 동란으로 인한 전재민과 고아의 구호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고아원과 모자원을 설립하여 이들의 보호 육성에 눈부신 활동을 하는 등 우리나라 육영사업 및 사회복지 향상에 참여한 공적이 현저함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에 의하여 이에 문화훈장 국민장을 수여함. 대통령 박정희. 1965년 2월 19일, 국무총리 정일권.” 한국에서 43년간 일하고 1970년 9월 14일 정년으로 은퇴하여 본국으로 돌아갔고, 1992년 1월 9일 89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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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구호활동에 나선 선교사들5, 권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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