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7-3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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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 방송사를 통해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가 방송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일까? 드라마가 방송된 이후 많은 패러디가 나왔다. 아빠의 품격, 엄마의 품격, 숙녀의 품격, 시험의 품격, 교사의 품격, 학생의 품격 등. ‘품격’은 어디에 붙여도 좋은 말을 만들 수 있다.

 

그럼 이런 말은 어떤가? ‘성도의 품격’. 성도는 당연히 품격을 갖추어야 하기에 아주 멋진 말이다. 이때 성도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품격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말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성도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2-24).

 

최근 한 교계 지도자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지역 교회 지도자 그룹 단체 대화방에서 코로나 19 백신을 맞아서는 안 된다는 글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백신의 안전성 문제 때문에 이런 글을 올렸다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백신을 거부하는 이유를 백신 속에 사람을 제어하는 성분이 들어있고, 그래서 이것을 맞게 되면 백신을 주입한 집단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글에 많은 분이 맞장구를 치며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단체 단톡방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문제의 심각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금만 확인해 보면 거짓인 정보를 사람들이 퍼 나른다. 언젠가는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 과격분자가 기독교인들을 처형한다고 급히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문자가 날라왔다. 너무 안타까운 소식에 많은 사람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기도를 요청했는데 뒤에 확인해 보니 몇 년 전 내용이었고, 그것도 각색하여 보낸 거짓 글이었다. 기도와 거짓이 콜라보 되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별히 성도들의 단체 대화방에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을 올리는 것은 성도의 품격을 무너뜨리는 행동이다. 자신은 그것이 옳다는 신념으로 올리는 것이겠지만 이것은 반대편에 선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이다. 어차피 우리 사회는 51:49의 생각으로 나눠진 사회이지 않은가? 한쪽 편에 선 정치적인 생각을 주장하게 되면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불쾌하게 되고, 결국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성도가 불화할 때 누가 가장 좋아할 것인가? 우리의 원수 마귀이지 않은가?

 

성도의 품격을 상실한 또 다른 현장들도 있다. 어떤 교계 모임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다. 그날 설교한 분은 성경 한 구절 읽고는 본문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극단적 한쪽 편 입장의 정치 이야기를 거짓된 정보를 섞어가며 설교 시간 내내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을 향해서는 막말과 욕설을 섞어가면서 말이다. 몇 분이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를 이탈했다. 도저히 성도의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성도다운 품격을 지켜야 한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신 성도의 입에서 거짓이라니! 마귀의 별명이 거짓의 아비이지 않은가? (요 8:44) 이솝 우화에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다가 실제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당하게 되는 결과를 알지 않는가? 특별히 교회 지도자의 입을 통해 나온 거짓된 말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만다. 교회의 지도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결국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성도와 교회는 죽음의 말을 거부하고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성도의 품격은 진리와 생명으로 나타나야 한다. 죽음의 말을 거부하고 진리에 기반한 생명을 노래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한 말을 유념하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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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철 목사]성도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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