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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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 과연 정도(正道)란 것이 있는가?’ 라는 질문 앞에, 필자는 한참 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정도는 있다. 그런데 그 정도를 가는 사람과 상황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임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회가 이렇게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렇게 보인다.

 신앙의 길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미 그 정도는 찾아보기 쉽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오히려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길로서의 ‘금도(禁道)’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것이, 지혜인 양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정하신 원리가 있다. 그런 원리들은 신앙과 불신앙에 상관없이 인간세상의 근본원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가령 창조의 질서는 인간이 그것을 순리로 받아들여 끝까지 지킬 때, 그것이 인간 스스로에게 가장 바른 길이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어길 때 인간의 세상에 스스로 재앙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원리, 인간이 반드시 걸어야 할 그 길, 그 정도(正道)를 걸어가야 참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들어 소위 지도자들이라는 입법부에 속한 자들 중에 이런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거스르는 악법들을 제정하려는 시도들을, 여러 차례 거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며, 힘있는 자들에 의해 제정될 가능성을 많이 갖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의학적으로도 분명한 문제를 지니고 있음을 알면서도, 소수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이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역시 정도를 거스르는 주장이다. ‘정도’ 의 피해자들이라면, 그 피해를 인정해주면서 그들이 그 정도를 걷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은 방편인데, 정도가 아닌 자들의 인권을 주장하면 금도를 정도로 받아들이는 주장은 틀린 주장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그 어떤 영역에서든지 바람직한 방향으로서의 정도는 있다. 교회정치에도 정도는 있다. 그 정도와 온전히 일치하는 삶을 살기는 쉬지 않겠지만, 그 정도를 가려고 노력하는 시도는 우리들에게 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종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정도라고 하더라도 그 길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늘 하고 있다. 필자는 그 여러 가지 중에 딱 한 가지만을 지적한다면, ‘거짓말’, ‘음해’ 로 타인을 폄훼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성경을 근간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그것은 아주 분명해야 한다. 특히 그 직위가 목사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기득권을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기득권에 침해를 받게 되면, 그 새로운 고침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와중에 기득권의 피해에 대해 악감정을 가진 자들은, 사자처럼 자신의 발톱은 숨기고, 제 삼자를 동원하여 거짓말과 이상한 음해성 발언을 퍼뜨리므로, 한 사람, 또는 한 단체를 완전히 훼파하려는 그런 일들을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조금만 내려놓는다면, 그 새로움의 시기가 지금이어야 하고, 그 새로움의 시기가 나로부터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나 다른 기회는 상관없이 자신만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갖게 되고, 그 기득권 사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정도(正道)’ 는 본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반드시 살아내어야 할 당위성을 지니는 것이다. 적어도 없는 말을 만들어, 잘 짜여진 소설 한 편으로, 사람을 감동시켜 매도하는 그런 악한 일들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없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아주 한 부분의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목사로서 이런저런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교계관련의 여러 가지 일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 일의 가치유무를 떠나서, 아주 잘 지어진 그럴듯한 스토리들이 사람들을 현혹하는, 비정상적인 일들을 보면서, 적어도 이 일은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도와 금도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사로운 이익의 개입이 아주 큰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당당하고, 또 기득권을 내려놓을 마음을 당당하게 가질 때 교회의 정도, 하나님 나라의 정도는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나타나리라 믿는다. 이런 사회, 이런 교회가 우리 가운데 가득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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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목사]적어도 거짓은 ‘정도(正道)’ 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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