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4(월)
 

김희정 대표.jpg

밤 11시 40분. 월요일과 화요일(3월부터 5월, 9월부터 11월)에 내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다. “돌봐야 할 어린 아이가 있는데도 엄마가 그 늦은 시간에 들어간다고? 일주일에 두 번이나 자정 즈음에 들어가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내게 이런 말들을 하고, 나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돌려서 내게 이런 분위기로 말을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러게요. 참. 그렇네요” 라고 얼버무리고 말지만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이런 상황을 보내야 할 때라 참고 견디며 있는 중이다.

 

그런데, 항아리에 물이 차고 차다 한 바가지만 더 부으면 흘러 넘치듯, 이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이 차고 차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감정이 차고 넘쳐 나의 한계를 만나는 일을 종종 경험한다.

지난 월요일 밤이 그런 날 중 하루였다.

그날도 역시 자정 무렵 집에 들어가니 둘째 아이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평소에는 내가 늦게 들어가는 날에는 아이들이 자고 있다.) 이유를 들어보니, 모르는 수학, 영어 숙제가 있어서 엄마와 같이 하려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내일은 등교하는 날이라 일찍 잠들어야 하는 아이가 숙제 때문에 그 시간까지 엄마를 기다렸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답답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몰려왔다.(물론 남편이 그 시간에 집에 있기에 숙제를 종종 도와주지만, 둘째는 꼭 엄마랑 같이 숙제 하는 것을 좋아한다.)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하고 아이 책상에 앉아 꼬박 1시간 반을 함께 숙제를 했다. 4학년이 되면 곱셈 나눗셈의 단위가 높아져서 아이들이 힘들어하는데, 우리 둘째가 지금 딱 그런 상황이고, 발음하기 어려운 영어가 많아지는 것 또한 아이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숙제를 다 끝낸 아이를 재우고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었다. 온 종일 해야 할 일을 마치느라 몸은 엄청 피곤한 상태인데 이상하게 정신은 말짱했다. 아니, 정신이 말짱했다기 보다는 뒤엉킨 감정의 실타래가 피곤한 육체보다 더 커서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부모로서 또 다시 한계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일도 하고, 집안일도 뚝딱뚝딱 잘하고, 아이들도 매끈매끈하게 잘 키우는 슈퍼맘이 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은 결코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일도 완벽하게 잘하지 못하면서, 집안일은 엉망이고, 아이들은 하나둘 부족한 부분이 있는 약할 대로 약한, 미숙할 대로 미숙한,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를 만나는 내 모습을 또 발견한 것이다.

 

이럴 때,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감정은 다름 아닌 ‘자괴감’이다. 이상적으로는 잘할 수 있다고 큰 소리 뻥뻥 치면서 실제로는 여기저기 구멍이 펑펑 터지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은 마음, 내가 스스로 부끄러워 당장 연기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자괴감이 나를 짓누른다.

 

그날 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다시 이 마음을 안고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하나님, 오늘도 나는 나의 한계를 만나며, 또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임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를 만져 주시고, 나에게 하나님의 긍휼함을 주셔서 하루하루 은혜로 살아가게 인도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한 다음, 이런 상황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 주님이 있다는 것에, 내 모든 감정과 상황을 그대로 말할 수 있는 나의 주님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나는 부모로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나의 한계를 만날 것이고 그런 순간마다 나의 한계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종종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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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부모로서, 인간으로서, 한계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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