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4(월)
 

전영헌 목사(N).jpg

몇해전 학교에서 아버지 학교를 열었을 때의 일이다. 6주프로그램으로 계획을 세워, 부자간의 기질의 차이, 대화법, 아버지의 역할 등에 대해서 workshop 형식으로 진행을 했다. 이름은 아버지 학교였지만 진행을 하다 보니 집단 상담처럼 방향이 흘러갔다. 계획했던 세미나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실패한 계획 속에서 놀라운 치유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 아이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가정만 아픔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를 통해 참석한 아버지들은 서로를 보면서 위로받고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 학교만의 새로운 아버지학교의 틀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6주간의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주차에는 어머니들과 아들들을 같이 참석하게 했다. 간단한 종강파티를 하고 세족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준비한 세수대야에 물을 채워놓고, 아버지들이 정장을 하신 채로 손에 수건을 들고 아들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야간자습을 하던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세미나 장소에 왔다가 엄마 아버지가 계신 것을 보고 당황을 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들들 몰래 참석하셨던 것이다.

아들들을 자리에 청해서 앉게 했다. 아들은 의자에 앉고 엄마는 의자 뒤편에 서서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아들을 세족하고 축복하는 것이 그 날 계획된 프로그램이었다.

세족을 하기 전, 나는 “지금 이 시간은 우리 아버지들이 아들들에게 세족을 하면서 축복하는 시간입니다. 아버지들, 아들의 발 오랜만에 보셨지요? 이제 아버지보다 발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목욕을 같이 다니며 몸을 씻겨주었던 날 이후로는 아마 아들의 발을 씻겨줄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지금 아버지들 앞에 어느 순간 훌쩍 자라버린 아들들이 앉아 있습니다. 지금 세족을 하기 전에 아들들의 눈을 보면서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하신 후에, 아들들이 두 발로 씩씩하게 걷고, 뛰고 세계를 누비는 발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곳에는 서고, 필요치 않는 곳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 출입의 지혜를 달라고 축복하며 정성껏 발을 씻겨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분 정도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최고의 축복과 격려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용히 음악을 틀어 주고 세족식을 진행했다. 어머니들은 아들의 어깨를 잡고 격려하고 있었다. 축복을 하라고 했지만 침묵이 흘렸다. 쭈볏거리든지, 아니 뭔가 말은 하고 싶은데 용기 내어 말을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한분의 아버지가 갑자기 오열을 하기 시작하셨다.

“목사님 내가 죽일 놈입니다. 내가 죽일 놈입니다. 지금 아들에게 축복하라고 하셨는데 지금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말은 ‘공부 잘하거라’ 라는 말만 기억납니다. 내가 이러고도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나쁜 놈이다. 내가 나쁜 놈이다.....”

아버지의 외침은 옆으로 전달되었고 아버지의 눈물은 나머지 아버지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왜냐하면 나머지 아버지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제자녀석이 무릎을 꿇더니,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를 안으면서 “아빠 울지마라. 내 아빠 맘 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라. 이제 내 아버지 눈에 눈물 안 나게 할게. 아빠 울지마라~~”

아버지의 세족이 오히려 아들들이 아버지를 안아 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역전이 되어 버렸다. 나 역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아이들에게 일어나라 했다. 그리고 아버지들을 안아 드리라고 했다.

“녀석들아 아버지들의 마음이 이렇다. 혹시나 학교에 와서 너희들 눈에 띌까봐 아버지 학교도 몰래 신청하시고, 몰래 도둑 고양이처험 6주간을 다니셨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몰라서 상처 준 것들이 많다면서 시간마다 많이 우셨다. 이 자리에 계신 아버지들은 아버지 자신보다 너희들이 잘 되는 것이 더 큰 기쁨이라고 하시는 분들이다. 너희들을 위해서 자존심을 구겨 가며 직장 생활하고, 장사를 하고, 너희들이 사회에 자립잡을 때까지 열심히 돈 벌어야 해서 직장에서 안 짤리기 위해서는 험한 꼴 당하면서도 버텨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런 아버지들이 너희 앞에서 울고 계신다. 이젠 너희들이 안아 드려라. 아버지 수고하셨다고 안아드려라. 이만큼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해라. 이제 아버지의 수고를 너희들이 감당하겠다고 말씀 드려라.”

비록 힘들게 세족식을 마쳤지만 이 날을 통하여 아홉 가정은 새로운 가정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아홉 가정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계모임으로 모이신다. 학교는 이런 곳이다. 아이들을 붙들고 가야 하지만 때로는 가정으로 눈을 돌리려 가정이 회복될 수 있도록 소통해 주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가정에 관심이 많다. 가정이 살아야 아이들이 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브니엘이 좋다. 일반학교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생명을 나누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우리 학교가 너무 좋다. 브니엘의 이름으로 지금도 가정들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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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칼럼]내가 죽일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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