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 애환이 담긴 은천교회 철거
부산시 근대문화유산(종교시설) 등록된 교회 전무
1952년 한국전쟁 당시 천막교회로 시작해 1955년 건물을 지어 피난민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준 은천교회(박현규 목사)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부산시 서구청은 아미4 행복주택 진입도로 확장공사에 은천교회 부지를 포함시켜 지난 17일 교회건물을 철거했다. 은천교회는 피난민들에게 강냉이 죽을 전하는 보급소와 학교 역할을 감당했고, 건물 자체적으로도 1950년대 석재로 지은 교회건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았던 곳이다. 부산에는 총 2개의 석재 교회건물이 있는데, 이제는 1960년대 지은 교회 한곳만 남게 됐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50년대에 지어진 건물 중 현재까지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며 "부산지역 근대건조물뿐만 아니라 전국단위로 생각해도 흔치 않은 사례"라고 전할 정도다.
교회 자체적으로 복원을 계획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현규 목사는 “처음에는 이전 복원(비용 8억원)을 할 생각이었지만, 책정된 보상금(4억 5천)이 적어서 고민했었고, 지금은 철거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소실됐다. 현재로서는 완전한 이전복원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목사는 “안타까워하는 성도들을 봐서라도 부분 복원을 시도할 생각이다. 현재로서는 이 마저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힘을 내어 볼 생각”이라며 지역교회들의 관심과 기도를 당부했다.
부산시 근대문화유산에 교회건물 없어
부산시는 2009년 ‘근대건조물보호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부산지역 근대 도시형성기에 지어진 건축물과 시설물 등 근대 건조물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지어진 법이다. 이 조례안에 따르면 근대 건조물의 보호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근대 건조물을 보호, 지원하기 위한 보호위원회를 설치해 필요할 경우 보조금도 지원하게 된다. 하지만 근대 도시형성기에 큰 역할을 한 교회 건물들의 경우 부산시 근대문화유산에서 이름을 찾아 볼 수 없다. 현재 부산시 근대문화유산은 교육시설, 종교시설, 업무시설, 산업시설, 주거시설 등으로 구분되는데, 부산지역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부산진일신여학교(부산시 기념물 55호)만이 교육시설로 부산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종교시설에는 총 6곳이 등록되어 있는데, 이중 교회건물은 전무한 실정이다.
대부분 성당들이 근대문화유산 종교시설로 등록되어 있고, 일본사찰 한 곳이 포함되어 있다. 또 부산시 지정 문화재만 살펴봐도 총 204점 중 불교계가 120개 이상을 차지한다. 부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범어사 한곳의 문화재만 40개가 넘는다. 때문에 재개발 재건축을 하더라도, 사찰이나 성당은 대상에 쉽게 포함되지 못한다. 이처럼 천주교와 불교계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소중한 자산들을 문화재나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교단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
부산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유산과 담당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제정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문화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구청에서 ‘검토해달라’는 신청서가 올라와야 한다. 문화재위원회가 스스로 찾아 나서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교계의 노력이 없다면 근대문화유산 등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독교 역사학자 이상규 교수(고신대 명예교수)는 “한국전쟁 전후 부산에 지어진 피난교회 숫자만 대략 60개가 넘는다. 당시 교회는 피난민들의 삶에 희망과 용기를 안겨줬고, 식량보급과 교육, 의료지원 등 건축물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교계가 이런 유무형의 역사적 자료등을 보존하고 후대에 알리지 못하는 있는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이번 은천교회 철거를 계기로 지역 교계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교회들을 살펴보고, 근대문화유산(종교시설)에 등재될 수 있도록 연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