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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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첫 날을 “메이 데이(May Day)”라고 부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미지와 사뭇 다른 “근로자의 날”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곳곳의 오월에 안타까운 사연들이 꽃같이 피었습니다. 1993년 5월 10일 태국의 한 인형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188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작업능률과 도난방지를 위해 출입구를 막아놓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들을 추모하며 국제노동기구(ILO) 등이 제정한 날이 바로 “산업재해노동자의 날”(4월 28일)입니다. 한국은 올해 들어서야 이 날을 법정기념일에 포함하자는 발의가 나왔습니다. 2016년 5월 26일만 해도 서울 구의역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던 약관의 청년이 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말입니다. 당시 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용 절감을 위해 4-6명의 하청업체 직원에게 48개 역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2인 1조 작업이 불가능한 상태를 조성하여 결국 어린 김 군이 홀로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2월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가 한 발언이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사고 유형을 보니 실질적으로 작업자 행동에 의해 많이 발생했다.. (작업장의) 불완전 상태는 안전시설투자로 바꿀 수 있지만, (작업자들의) 불완전한 행동은 상당히 어렵다.” 동회사는 최근 5년 간 산업재해신청 현황 1위였고, 직전 대비 사고가 2.2배 증가했으며, 사업장 특별관리도 실시되었으나 개선된 부분이 없다는 지적 끝에 나온 반응이었습니다. 이를 옹호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산업안전관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들도 개인적인 책임을 강조하는데, 호통만 치면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의원들이 문제라는 식의 기사도 존재했습니다(조선, 2021.3.1). 하지만 동시에 “내 아들을 살려내라”며 울부짖는 어머니와 함께 젊은이를 사지로 내몬 기업과 환경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이 분야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는 1931년「산업재해예방 : 과학적 접근」에서 “1: 29 : 300 법칙”이라는 유명한 이론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중상자 1명이 나왔다면 이미 그 이전에 경상자가 29명과 잠재적 상해자 300명 정도가 있었으리라는 추정입니다. 그러면서 재해가 일어나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정했는데(도미노 이론), 그 중에서도 불완전한 행동이 산업재해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80%). 그러나 1969년 버드(Frank Bird)는 170만 건의 사고를 분석한 뒤 하인리히 이론을 수정․보완한 신 도미노 이론을 내놓습니다. 그에 따르면 재해는 <관리감독의 부족, 기본원인, 직접원인, 사고, 재해>의 다섯 단계를 거치는데(New Domino Theory),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관리감독과 기본원인이며 따라서 이 둘에 주력해야 실질적으로 재해를 줄이고 예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2020년 9월 가수 하림은 의미심장한 노래를 한 곡 발표했습니다.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을 가진 이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자동차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마라...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창문 곁에 세워두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 번 만져보게.” 다음은 하림 씨의 말입니다. “십 년 전 바로 오늘, 당진에서 스물 아홉 청년이 용광로에 추락해 사망했다... 그 후로 여태까지 위험한 상황은 사라지지 않아서, 요즘도 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다.” 2018년에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다른 이십 대 청년이 목숨을 잃자, 희생자 이름을 딴 법개정안(김용균법)까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곳곳에 위험은 산재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동안 이러한 현실을 모른 척하고 살았을까요? 구약의 성전은 만군의 여호와를 모시는 신전치고는 너무 왜소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성경은 곡식 떠는 소까지도 챙겨주라는 말씀을 남겼을까요? 왜 예수님은 이 땅에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자의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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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그 쇳물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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