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5-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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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에 고민은 모든 교회의 관심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는 오늘보다 내일이 좋은 교회를 꿈꾸기 보다는 오늘에, 또는 부가적인 사역과 관심에만 집중해온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에서의 리더쉽보다는 지역과 대립적, 또는 초월적인 존재로만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지역과 무관하게 존재해 온 교회공동체에게는 다음세대에 대한 문들은 많이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눅10:25-37절에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말씀을 들으며 이와 같은 결단을 하게 됩니다. 물론 본문의 핵심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눅10:26-28절에서의 결론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래서 우린 사랑이 이유가 되는 삶을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자는 그런 결단으로 마무리 합니다. 이것은 분명 아름다운 목표이긴 합니다.

이 비유 속의 등장인물은 강도만난 사람을 제외하면 세 부류의 사람입니다. 이들의 강도 만난자에 대한 행동은 많은 생각에 여지를 남깁니다 

먼저 제사장입니다.

예수님께선 이 강도당하고 죽게 된 사람을 도와줄 인물로 제일 먼저 제사장을 등장시키십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24반차로 나누어서 일년에 2주씩 성전에 가서 봉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봉사하는 주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지요.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멀지 않으면서도 부유한 도시였던 여리고에 머물기를 선호했다고 합니다.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여리고 성은 약 5000명 정도의 제사장들이 거주했던 부유한 도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첫 등장인물로 제사장을 등장시키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강도당하여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눅10:31)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번째 지나가는 인물로 등장시키신 레위인도 역시 제사장과 함께 성전에서 봉사하는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도 역시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눅10:32). 당시의 가장 영적으로 존경받던 지도자인 제사장도, 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인도 모두 이 강도당해 죽어가는 남자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제 청중들은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에 등장시킬 다음 사람을 궁금해하며 머리속으로 누구일지 상상해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음 등장인물로 청중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청중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한 부류의 사람: 사마리아인을 등장시키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존재했었지만, 1세기 말에 확정된 18개의 유대인의 기도문 중에서 12번째 기도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한 순간에 멸망당하게 하시고, 저들의 이름을 생명록에서 제거해 주시옵소서"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위와 같은 내용을 기도문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고 저주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이렇게까지 경멸하는 부류의 사람이 등장하여, 거룩한 제사장과 레위인마저 하지 않은 선행을 베푸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유대의 청중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본질적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니겠는가 하는 가지가 우선하는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이 비유의 배경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악이 서식하기에 최상의 환경적 요건을 지닌 지역이라 보는 것도 틀리지 않은 관점이라 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 그 환경을 개선한다면 강도 만난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가로등을 설치한다면, 그렇게 환경을 개선해 간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이 없어도 이 사회는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이런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지역교회의 당위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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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이야기] 다음세대에 고민은 모든 교회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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