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5-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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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낭비하지 않은 인생을 말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항상 유머를 동반한 교육적 가치가 빛난다. 피교육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흥미진진한 교육방법을 추구하는 교육자라면 그리고 목회자라면 그의 영화만큼 좋은 시청각 교육자료는 없다. 영화 <사도>에서는 영조의 강압적인 교육열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를 보며 가정교육의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백제(전라도)와 신라(경상도)의 결전을 보여준 <황산벌>에서는 사투리를 해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백제를 공격하지 못하는 신라군의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지켜보며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라디오 스타>(2006)와 <즐거운 인생>(2007)에서 <변산>(2018)에 이르는 현대물 또한 사회의 주변부에 머무르는 인물을 통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이준익 감독은 유머 감각을 곁들이며 관객을 감동적인 교육의 현장으로 인도했다.

 이 감독의 영화를 통한 의미의 전달 양식은 1959년생인 그의 나이가 말해주듯 자칫 ‘꼰대 이야기’로 들릴 듯하지만, 현대인이 잃어버린 혹은 필요로 하는 시대상의 가치와 맞물려 매우 품격있는 영화로 인식되곤 한다.

 그의 최신작 <자산어보> 또한 마찬가지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에서 16년간 귀양을 살면서 쓴 <자산어보>가 기록된 배경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당시 국가적 지탄의 대상이었던 사학죄인의 남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절망과 고독의 순간에도 빛날 수 있는 세계관의 결과이기도 하다.

 절망적일 것 같은 흑산도의 유배 생활에서 정약전(설경구)은 사람과 바다를 발견한다. 영화에서 그는 주변을 돌아보고 이웃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절망과 고독을 이기는 비결임을 깨닫는다. 정약전은 서자출신의 젊은 어부인 창대(변요한)와 깊은 교류를 나누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뿐만 아니라 상것들이나 관심을 보일 물고기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다. 아무리 죄인이라고는 하지만 유교 사회에서 중앙관직에 올랐던 양반이 비린내 나는 생선을 주무르고 갯벌을 헤집고 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괴상한 행동에 의문을 품은 창대를 향해 약전은 이렇게 말한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 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약전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물고기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유교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즉 바다와 물고기에 대한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을 기록하려는 자세는 서학과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세계관의 결과이다. <자산어보>는 일종의 어류도감이다. 유교가 중심인 당시 상황에서 생물학자도 아닌 그가 나름대로의 분류법을 만들어 어류도감을 쓰는 이유는 서학으로부터 실용적인 지식의 가치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세계에 대해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장약전과 동생 정약용은 가톨릭 신앙을 가졌었지만 후에 가톨릭과 결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약전 연구가들은 그가 가톨릭 신앙을 떠난 이후에도 예수의 십자가구속과 같은 핵심 교리를 믿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인격적이며 만물을 주재자인 하나님으로서의 천(天) 개념을 유지하였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천(天)이 만물을 짓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평등적 인간성(仁)을 부여하였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서 이를 유배 생활 가운데서도 적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정약용이 아닌 정약전일까?

정약전의 동생 정약용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견될 만큼 조선 후기에 다양한 분야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철학에서부터 유학과 법학, 의학, 건축 등 조선 후기에 살았던 실학자로서 일반적인 학자가 관심을 가졌을 분야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영역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탁월한 저서들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남긴 500 여권의 저서들은 워낙 분야가 다양하고 방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어서 아예 정약용을 학문의 중심에 놓고 그의 사상을 연구하는 다산학(茶山學)이 탄생할 정도다.

 그렇다면 정약전(丁若銓)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어떨까?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정약용의 형이며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저자라는 정도는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정약용에 비하면 생소하기만 하다. 특히 정약용의 유배지인 강진에 비하면 정약전이 16년간 유배 시절을 보낸 흑산도는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대중들에게는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993) 시리즈의 첫권인 ‘남도답사 일번지’에서 첫 번째로 꼽은 장소가 전남 강진이었고, 강진의 문화와 역사의 중심에는 정약용과 다산초당이 있었다.

그런데 흑산도는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도 2시간을 가야 하는 섬이고, 강진만큼 인기 관광지도 아니며 흑산도 홍어가 생각날 뿐 그 누구도 정약전을 흑산도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중적이며 의미있는 역사 영화를 잘 만들기로 소문난 이준익 감독은 강진의 정약용이 아니라 흑상도의 정약전을 택했다. 당연히 할 얘기도 많고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익히 잘 알고 있어서 정약용을 다루는 영화를 만든다면 흥행에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는 정약용이 아닌 정약전을 취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민초 중심의 역사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전에 만든 역사 영화의 면모를 훑어보면 답은 금방 찾을 수 있다. <왕의 남자>(2005)로 시작하여 <황산벌>(2003)과 <평양성>(2011), <사도>(2015), 그리고 <동주>(2016)와 <박열>(2017) 등의 역사물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의 정약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역사를 보는 시각 가운데 하나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숨은 역사를 통해 현시대를 잘 들여다 돌아보는 일이다. 이준익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과거 역사와 현재와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역사는, 현재를 투영하거나 반영하는 것이다. 현재를 반영하지 않을 거면 사극을 왜 찍어야 하나?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와 맞닿는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록된 역사와 흥미진진한 왕과 권력 중심부에 있었던 인물을 통한 역사 외에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혹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의미를 전해주는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이준익 감독은 카메라의 앵글을 맞춘다. 그로 인해 관객은 천편일률적인 역사가 아닌 새로운 역사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역사를 창출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 극복의 비결, 젊은 벗을 두었는가?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정약전의 명대사로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를 들었다. 이것은 약전이 창대의 스승 역할을 하면서 벗으로 살아갔던 유배 생활의 묘미를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외울 줄밖에 모르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다”라고 생각하는 약전과 어떻게든 유교 경전을 공부해서 출세를 원하는 창대는 가치관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거기다 양반과 서얼이라는 신분의 차이는 물로 나이도 확연히 구분된다. 평생을 공부만 하던 선비와 물고기만을 잡아 온 어부 사이에서 공통점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벗이 되었으며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로 변했을까?

 영화는 서로를 인정하며 자신의 필요를 채워줄 상대를 발견했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약전은 바다와 물고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창대를 인정하며 자신이 가진 실학 정신을 구현해간다. 창대는 약전이 비록 나라의 벌을 받는 사학죄인이지만 그의 학문의 깊이를 인정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글공부를 도와줄 사람임을 알게 된다. 사대부는 어부와 함께 하지 않고 왕을 따르는 백성은 사학죄인을 가까이 해서는 안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공부를 돕는 관계로 나아가면서 서로의 인생의 발전을 꾀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통해 교육자료를 얻게 되었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교회를 성장시키데 <자산어보>는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와 교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세대 간의 갈등이다. MZ세대(밀리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는 기성세대를 불신하고 기성세대는 이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고 이해할 수 없는 세대라며 혀끝을 차고 있을 뿐이다. 교회는 특히 최첨단 기술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란 MZ세대를 수용하는데 그 어려움이 더욱 심하다. 해결방안은 <자산어보>가 보여주었다. 세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인생의 발전을 이루어가는가를 말이다. 영화에 초반부에 등장하는 약전과 창대 사이의 관계는 전혀 화합할 수 없는 갈등 덩어리였지만, 어느새 서로에게 벗과 스승의 관계로 새롭게 변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입신양명의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창대가 약전이 쓴 <자산어보>를 붙잡고 우는 장면에서 결국 그들은 하나의 가치관으로 통일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 내 안에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면 진리 안에서 새로운 세대와 하나 되는 기쁨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문화가 다르고 외계인처럼 사는 것 같지만 MZ세대에게도 배울 것이 있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교회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약전이 유배 생활 중의 시선을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했다면 그는 결코 행복하지도 않았고 <자산어보> 같은 위대한 자연과학서는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흑산도에서 그의 눈길은 자신이 아닌 자신을 둘러싼 어부들과 바다를 향해 돌렸고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고 그를 따르는 제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이제 돌아보자. 벗을 삼고 스승을 삼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호기심을 가득 머금은 눈길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볼 일이다.

강진구 교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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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배 속에서도 빛나는 인생을 만드는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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