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5-18(화)
 

1951년 6.25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온 이후 기독인들이 부산지역내 부민교회를 비롯하여 초읍교회 등 20여 교회를 개척했다, 부산영락교회는 특히 故 한경직 목사 등 서울 영락교회 교우들이 한데 뭉쳐 서구 부민동 위치에 부산영락교회로 재건했다.

정확히 말하면 70년 전 1951년 1월 7일 불과 30여명의 피난민들이 모여 한경직 목사를 중심하여 개척한 피난 시절 교회였다. 수복 후 다시 서울로 가는 교인은 떠나고 부산에 남아 있던 교인은 故 강신명 목사에 이어 바톤을 받은 故 고현봉 목사가 같은 이북 출신으로 대개 이북에서 월남한 교인이 대부분이었다. 고현봉 목사가 시무할 시절 1970년에는 이남 출신 교인과 이북에서 개척한 교인들이 서로 보이지 않는 대립과 갈등을 보이기 시작했고 고현봉 목사가 현 부민동 자리에 신축(지하 1층, 지상 2층)을 하면서 완공할 1983년 즈음에 통합 교단 총회장 취임하면서 총회장소로 이곳에서 행해졌다. 혹자는 이남 출신인 故 서석호 장로(한국요업 대표이사)와 故 박영희 장로(부산내과의원 원장)의 이남 대 이북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으로 일반 교인들에게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 분쟁의 한 가운데 故 고현봉 목사의 양딸 고명자 집사가 개입되어 싸움의 불씨가 번지게 되었다. 고 목사는 서석호 장로를 지지하여 훨씬 교인 숫자가 많아 반대 측은 불리한 양상이었다. 하지만 이북 출신 등이 대개 부산 교계 명성이 있는 분이 많고 알짜배기 교인들은 반대 측에 서있었다. 소속된 통합 교단 부산 노회 역시 반대 측에 손을 들어 주었다. 결국 따로 분리하여 개척한 곳이 지금의 하단 영락교회(통합 측)이고 고 목사 측은 교단을 탈퇴하여 백석교단으로 옮겨갔다. 이것이 바로 제1차 분열 역사이다.

1987년 분규 이후 34년 만에 또다시 내분으로 시무 장로 9명을 불신임으로 퇴출하는 바람에 새로 개척하여 나온 측이 지난 3월 14일 대신동 부산신학교 강당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교인 62명을 시작으로, 두 번째 예배를 드린 21일 주일날에는 95명이 참석하여 부활주일이었던 4일 139명이 참석했다. 교회 명칭을 가칭 ‘소명교회’라고 하고 부산노회(통합)에 가입을 검토키로 했다. 둘째 주일 3월 21일은 시무장로 10명과 원로장로 1명이 참석하여 서로 감격하는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오는 5월 2일 주일에는 이재철 목사를 초청, 설립감사예배를 가질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제2차 분열은 사실상 진행형이고 한편으로는 관할 서부 경찰서에 두 명의 장로가 담임목사를 상대로 횡령 및 배임으로 고소는 근 4개월 동안, 지난 해 12월부터 진행해 오고 있으며,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영락교회 50주년기념준비위가 양산에 대지를 약 1만5천여 평을 구입하여 제2성전 겸 기도처로 시작한 것이 발단이다. 양산 그린벨트 부지를 담보로 대출받은 문제, 지리산 기도원 문제, 담임목사 안식년 시 지급한 사례비 문제 등 시시비비로 관할 경찰 당국에 고발한 상황이다.

 

△이렇게 오기 까지 분쟁의 핵심은 무엇인가?

분쟁의 핵심은 교회 기존 정관엔 담임목사 ‘70’세로 된 정관을 소속 교단 백석교단이 정년 75세로 늦추는 바람에 본 교회 정관 우선인 교인 총회로 통해 정관 개정을 허락하고 담임목사는 계속 시무하도록 당회원끼리 시비 거리가 된 것이다. 현 담임목사는 영락교회에서만도 교육 전도사 시절부터 만42년을 시무하면서 겨우 하단영락교회로 나간 이후 200여명도 안된 교인을 무려 2000여명의 교세로 확장하여 연간 60~70억 원 예산과 양산 제2성전과 다비다 모자원 운영, 지리산기도원 등 혁신적 부흥의 기초를 닦아놓고 든든한 대형교회의 기반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현 성전이 교인 수용이 협소하니 향후 2년만 더 목회하면서 새 성전 기초를 세우고 2년 안에 정년은퇴를 당회에 소신을 밝히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담임목사는 통합교단으로 옮겨 가는 문제, 하단영락교회와 합병 문제 등 기도하는 기도제목들이 채 이루기 전에 이런 불상사가 나게 되어 하나님과 교인들에게 너무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는 말을 필자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내가 뭐 75세까지 갈 생각은 없는데 일부 나간 장로들이 못 알아주니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결국 부산영락교회는 하단영락교회가 1차 분열이고 2차 분열이 이번 소명교회 분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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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년이 된 부산영락교회 끝내 2차 분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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