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반에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는 나 뿐이에요. 줌 수업하고 e-학습터 때문에 없던 아이들도 다 스마트폰을 샀어요. 나도 사주세요”
아이를 키우면서 의견이 대립할 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아이에게 설득 당해 요구를 들어줄 때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접점을 찾아 서로 조금씩 양보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협의 여지 없이 나의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폰은 처음부터 나와 아이 사이에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스마트폰의 유혹이 아이가 아닌 내게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주위에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엄마가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면 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제대로 챙길 수가 없어. 아이를 위해서라도 스마트폰을 해줘야해. 요즘에 뭐, 인터넷 안되는 키즈폰 이런 것도 많던데 그거라도 하나 해줘. 옆에서 보는 내가 더 불안하다”
나는 8살이 된 아이라면 혼자 학교에 갔다 집으로 돌아올 수 있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험해졌기에 요즘에는 안전 장치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권유했다. 맞는 말이긴 하나 설득은 되지 않았다.
아이도 처음에는 스마트폰을 이야기 하더니, 내가 스마트폰의 필요 이유를 물으며 어린 나이에 스마트폰을 했을 때의 유해성에 대해 이야기하니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고 급기야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스마트폰, 패드, 노트북 등으로 수업해야 하는 상황이 잦아지니 아이는 본격적으로 필요성을 내세우며 당당히 요구했다.
“엄마, 6학년 중에 스마트폰 없는 애는 나 밖에 없어요.(물론 나는 이 말이 거짓인 걸 알고 있다) 줌 수업하는데 엄마 노트북으로만 하는거 불편해요. 스마트폰 사주세요”
코로나 상황에서, 13살인 아이에게 아직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은 내게 어떤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엄마’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세월이 바뀌고 부모가 살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인데 아직까지 엄마 고집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그럴 싸한 명분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세상이 바뀌었기에 손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스마트폰이 13살 아이에게 필수품인 것일까?
점심 시간에 가끔 회사 주위를 산책할 때가 있다. 마침 인근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우리 아이들 또래와 비슷한 아이들이 있으면 눈여겨 보는 편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주위를 갈 때마다 보는 풍경은 비슷하다. 학교 앞 담장에 주르르 앉아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하고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 여름이면 여름, 겨울이면 겨울 할 거 없이 학교 앞 아이들은 대부분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은 “생각의 힘, 자기의 힘을 키워야 할 나이에 그 힘을 키우는 것을 방해하는 스마트폰이 초등학생들에게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고 말한다.
말랑말랑한 두뇌, 생각하는 힘 등은 어린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작은 우주인 아이들의 머리에 어떠한 것을 주입하느냐에 따라 10년 후, 20년 후가 완전히 달라진다.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이 아이의 미래를 내다보고 지금 해야 할 것들을 코칭하는 것이라면, 아이의 욕구에 충족하는 스마트폰을 건네는 것보다, 생각을 키울 수 있는 책을 권하고,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관계 등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작은 우주인 우리 아이들의 머리를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지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