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5(목)
 

작년 12월 23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3일 만에 하늘나라로 간 고 곽춘호 고려학원 재단사무국장. 갑작스런 비보에 교단과 교회, 주변 지인들의 충격은 컸다. 특히 곽 국장의 가족(아내와 세 아들)은 큰 슬픔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동안 곽 국장에 대한 다양한 의혹들이 노동조합(2016년 2월 15일 노동조합이 발행하는 그루터기를 통해 제기)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노동조합이 제기한 문제는 1. 행정처장의 임기 문제 2. 골프채 선물 3. 이중감면 4. 부친 의료비 감면 문제 등이다. 이후 본인 스스로도 수차례 해명(법인 재정소위원회와 법인 감사팀으로 총 3차례나 감사 받음)했고, 사법당국(검찰 특수부, 부산광역수사대, 국세청)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무혐의 처분까지 받았지만 억울함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징계위원회를 통해 해임이 처분됐다. 이후 곽 국장(당시 병원 행정처장)은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고려학원(당시 법인 이사장 강영안)을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부산노동위원회는 “(골프채 선물)동기와 구입비용의 출처를 막연히 의심하여 징계수위를 결정한 점, (부친의 진료비 경감분에 대한)근로자가 금전적인 이득을 취득했다거나 이 사건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끼쳤다고 볼 증거도 없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징계 중 가장 중한 해임처분을 한 것은 징계사유에 비해 그 양형이 과다하여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징계권을 남용한 것으로 부당하다”고 부당해고임을 인정하면서 곽 국장의 손을 들어줬다. 또 “이 사건 사용자는 이 사건 근로자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근로하였더라면 지급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이후 고려학원 이사장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중노위는 재심청구를 기각하면서 최종적으로 곽 국장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곽 국장은 원직복직은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법인은 강제이행금까지 납부하면서 곽 국장 보직 임명을 미루다가 중노위 판결(2017년 2월 3일) 후 1년 6개월이 지난 2018년 8월에야 법인 국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곽 국장의 허위학력 이력을 또다시 주장(2017년 5월)하면서 곽 국장을 면직 처리할 것을 압박(전 조합원들의 서명을 받으면서 교육부 장관과 공식 면담을 가질 것이라고)했다. 하지만 당시 법인 이사장이 바뀐 재단은 확인서를 통해 “곽춘호 전행정처장의 승진(5급 승진부터 2급 승진까지) 및 전보 등 인사 발령 시에 잘못된 학력이 기재된 인사기록카드가 사용된 내역이 없음을 확인합니다(2017년 8월 28일 발행)”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 줬다. 고신총회(당시 총회장 배굉호 목사)도 법인에 공문(2017년 8월 10일자)을 보내 “위법을 전 이사장이 먼저 행하고도 직원의 잘못을 치리하는 절차를 만들고 해고를 결정하였던 바, 징계위원회의 위원구성과 징계사유, 조사의무와 징계회부, 징계처분 등에 상당한 위법이 존재하는 것이 총회조사위원회의 조사내용 중에 인지되었다”며 문제의 원인으로 전 이사장(강영안 이사장)을 지목한 바 있다.

2016년 7월 4일 병원행정처장직에서 해임당한 곽 국장은 2018년 8월 29일 재단사무국장으로 임명되기까지 25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자 노력해왔다. 동시에 행정처장 당시부터 진행해 왔던 트루빔 손해배상 소송도 승소(22억 8천만원)로 마무리했다. 결국 늦게나마 재단국장이라는 보직에 임명되었지만, 노동조합의 문제제기는 최근까지 계속되어 왔다. 근 3년 동안 재단사무국 앞 벽보를 통해 곽 국장을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곽 국장은 비록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남편과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라는 큰 숙제가 남겨져 있다. 최근 곽 국장의 아내 이정애 집사(괴정제일교회 피택권사)를 만나 가족들 입장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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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곽춘호 국장의 아내 이정애 집사(괴정제일교회 피택권사).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이 큰 슬픔에 잠겨 있는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가장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 죄책감 때문에 힘이 듭니다. (남편이)우울증 증세가 왔다는 것을 알았고, 법인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작년 연말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이 무기력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일을 그만두게 했어야 했는데, 그게 가장 후회스럽습니다.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까?

- 쓰러지기 이틀 전부터 집에서 말을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지켜보았습니다. 어느날 새벽에 문자가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자를 보고 가슴을 치면서 “화가난다”고 소리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잠을 잘 못이루는 것 같았어요. 그런 점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요.

 

곽 국장에게 복음병원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 그렇게 모함을 당하면서도 가족보다 우선이었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태풍이 불면 집에 있다가도 병원에 갔으니까요. 주일날에도 예배를 마치면 병원으로 갔었습니다. 재단 사무국장이 되었는데도 병원 걱정을 늘 하고 있었지요. 처장 되었을 때 잠을 안자고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쓰러진 적도 있고, 늘 새벽에 출근을 했습니다. 마치 병원에 미친 사람 같았습니다. 그때 저에게 ‘잠을 푹 자보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우리 막내 소원이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것’이었는데요. 예전에 경주 1박 2일 여행을 간적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지요. 그런데 가는 도중에 병원에서 급한 전화가 와서 여행을 취소하고 돌아왔었습니다. 그만큼 남편에게는 복음병원은 가족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병원에 집착한 이유가 있습니까?

- 사명감이겠죠. 그리고 아버님(곽삼찬 목사)의 유언이었고요. 아버님이 늘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병원을 잘 지켜라’라는 말씀이었죠. 매주 주일 저녁마다 아버님 집에 가서 가족들이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때 제일 많이 들었던 것이 그 말씀입니다. 아버님에게는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었지요.

 

곽 국장에게 아버님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 효심이 지극했지요. 정말 부자지간 각별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많이 울었습니다. 집에 아버님 영정사진이 있습니다. 매일 출근할 때 아버님 사진을 보고 ‘출근합니다’고 인사를 했고, 돌아와서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힘들때마다 아버지 사진을 보고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 재단사무국에서 남편의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캐비넷 하나가 안열리더라구요. 열쇄가 남편 차 키에 달려 있었습니다. 열어보니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복음병원에 입고 오신 옷과 신발이 세탁되어 가지런히 놓여 있더군요. 힘들때마다 아버님을 그리워하면서 힘을 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슬펐습니다.

 

곽삼찬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가족들이 충격이 컸겠습니다.

- 아버님이 멀쩡하게 걸어들어오셔서 수술 후 37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병원 직원들이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의료사고’라고 하면서요. 저희 고모부님들이 모두 의사들입니다. 가족들 모두 감정이 격해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생활관 헌금자 감면 규정에 따라 감면대상자였지만, 어머니 이름으로 병원비를 납부한 것도 의료소송을 염두에 둔 것이었구요. 최소한 아버님의 사망원인은 밝혀야 된다는게 당시 가족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행정처장이었지 않습니까? 가장 걱정한 것은 자신이 다니던 병원을 상대로 의료소송을 제기한다면 병원이 우습게 되고, 교단의 명예도 실추시킬 수 있다는 염려가 컸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설득했습니다. 어머니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너희가 아버님을 돌아가시게 했다’며 원망도 많이 들었습니다. 처장이라는 자리 때문에 가족들의 원망도 감수했습니다. 그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현재 가장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 남들은 저희가 무척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은 저희에게 상당한 빚만 남겨 두고 갔습니다. 늘 생활비를 받아 써 왔기 때문에 남편의 수입지출 상태를 전혀 몰랐습니다. 이번에 통장을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 명의의 예금이 돼 있는 통장이 있었는데 그 돈은 시찰회 회계의 공금이었고, 마이너스 통장의 빚을 갚아야만 그 돈을 찾아 돌려 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시댁의 도움으로 빚을 변제해 줘서 공금을 돌려 줄 수 있었습니다.

 

몇 년전 병원 부장들에게 골프채를 선물해 주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오해를 할 만 하지 않습니까?

- 처장이 되고 기분이 굉장히 업되어 있었습니다. 병원에 뭔가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켜야한다고 생각했고, 부장들과 함께 일을 잘 해 보려고 여러가지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월급은 생활하라고 병원에서 주는 것도 있지만, 병원 일을 위해 쓰라고 주는 것도 있다’고 평소에 강조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 돈을 많이 썼습니다. 부장들을 격려하고 같이 열심히 해 보자고 골프채를 선물했고, 스크린 골프라도 같이 하면서 단합하자는 의미가 컸었습니다. 사람들은 골프채만 말을 하는데요 우리 가족들의 생일, 결혼 기념일은 잊고 지나가도 병원 간부들 생일은 챙기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많이 섭섭하기도 했었습니다.

외제차와 시계 때문에 오해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사실 남편은 늘 중고차만 타고 다녔습니다. 시아버님(고. 곽삼찬 목사님)께서 큰 기관에서 간부로 일하다가 보면 어른들을 모시고 다닐 일도 있을 것이라고 초라하게 모시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외형이 괜찮은 중고차를 구입한 것이지요. 이번에 그 차를 처분했는데 천만원 조금 더 받았습니다. 시계는 중국 여행 갔다가 산 것인데 우리 돈으로 십만원도 안하는 모조품입니다. 간혹 우리 아들들이 차고 다니면서 폼을 부리기도 할 정도였구요. 그런데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고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와이셔츠는 헤진 것을 입고 다녔고, 겨울에는 아이들 롱패딩을 입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2만 원짜리 구두가 닳을 때까지 신고 다녔습니다. 옷을 사러 가자고 해도 절대 가지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제가 사오면 야단치면서 겨우 입고 다닐 정도였지요.

 

그동안 가족들이 많이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 남편이 재단사무국에 일하는 것을 동네 주민들도 알고, 교회성도님들이나 가까운 지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일하는 사무실 벽에 노조가 벽보를 붙여 놓았습니다. 내용도 일방적으로 말입니다.

예전부터 노동조합이 주장해 왔던 내용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 살펴봐도 그들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금 남편은 감옥에 있어야 정상이지 않습니까? 온갖 비리의 주범으로 몰아왔고, 부산광역수사대, 검찰 특수부, 국세청까지 조사를 해 왔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 사법당국이 무능해서 그렇습니까? 저도 조사를 받았고, 제 통장 내역까지 보여 드렸습니다. 남편에게 중고차를 판 사람까지 조사를 받았을 정도로 먼지털이식 조사를 받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 친구들까지 (벽보에 대한)이야기를 하니까.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제가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으니까요. 그런 이유 때문에 가족들에게 무척 미안해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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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곽 국장이 재단에 부임하기 이전부터 벽보를 붙여 왔다.

 

남편의 명예회복을 요구한다고 들었습니다.

- 남편이 죽고 정신이 없을 때는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 그때(장례식) 평일이었으면 노조 사무실에 갔을 겁니다. 가장 소중한 걸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떤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겨진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그리고 마녀사냥 당해 왔던 남편의 명예를 조금이나마 회복시키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 스스로도 명예회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남편 컴퓨터에서 이사회에 보내는 탄원서를 발견했습니다. (탄원서 내용에는 그동안 자신을 모함해온 가해자들의 실체와 행위, 그리고 그 이유들을 증거를 제시함으로 징계를 받아야 할 근원이 조작되어 진 것을 밝히어 공개적으로 오명을 벗길 원한다는 내용. 또 자신의 인사기록에 남아 있는 해고와 정직의 기록을 지우길 원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 탄원서가 이사회에 제출되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라도 무엇인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상대로 소송을 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 남편을 보내고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시댁 식구들도 주변에 아는 변호사와 많은 상담을 했고, 가족 회의를 통해 논의중입니다. 남편과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의 도움도 받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어떤 결정된 것도 없지만, 남편 명예회복을 위해서 어떤 노력도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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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곽 국장이 쓰러진 다음날 벽보를 자진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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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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