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6(금)
 

박미화 대표.jpg2020년 봄, ‘코로나?’라며 가볍게 물음표를 던졌던 존재는 어느새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파괴시켜버렸습니다. 특히 매 주일 예배당과 주일학교를 향했던 신앙생활의 일상이 정지되어버렸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은 계속되는 고통 앞에 무기력한 채로 쓰러졌습니다. 마치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준 마른 뼈의 환상과 같습니다. 골짜기 지면에 말라비틀어진 채로 사방에 흩어져있는 뼈들과 같습니다. 예배당에 나가 예배드리지 못하니 생명을 잃은 마른뼈처럼 이리저리 쓰러져버렸습니다.

어린자녀를 둔 부모들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잠깐이라고 생각했던 펜데믹 사태가 1년이 다되어가자, 처음에는 우왕좌왕 고민하더니 이제는 아예 손을 놓고 자포자기해버린 듯합니다. 교회와 가정 모두 유아부, 유치부,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 같은 주일학교 조직과 프로그램이 다시 회복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겁니다. 펜데믹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가는 어린자녀들은 태어나서 교회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하였으며, 예배는 미디어를 통해서 드리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이러한 자녀세대를 향하여 그 누구도 심각성과 절박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교회와 가정 모두 그러한 듯합니다. 교회는 당회 때마다 코로나 사태에 청장년들을 잃지 않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느라 뜨거운 논쟁을 벌입니다. 부모들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본인들의 신앙을 잃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열띤 논쟁과 고민의 주제에 ‘자녀세대의 영적인 문제’에 대한 것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 교회와 가정 모두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자녀세대의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을까요? 저는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부모들이 자녀세대를 교회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단지 교회학교에 소속되어 교육받아야 할 대상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παιδίον, little children)들을 교육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복음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린자녀들을 예수님과의 만남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지금 당장 복음으로 살려내어야 할 존재, 즉 목양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린자녀들의 미성숙한 발달을 근거로 자녀의 신앙 역시 미성숙하다고 보았습니다. 많은 교회와 가정이 이러한 세상적 인식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로 보면, 교회 주일학교는 자녀세대가 청장년이 될 때까지 신앙을 연습시키는 교육프로그램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주일학교를 예배와 신앙생활을 연습시키는 교육기관으로 여깁니다. 그러니 주일학교 교육으로부터 단절된 것이 크게 위기가 되지 못합니다. 단지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주일학교가 다시 재개되면 기독교 연습교육은 다시 시작될 것이니까요.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렸으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잘못된 인식은 전혀 바꾸지 못하나봅니다. 한국교회와 가정은 자녀세대를 향해 지금 당장 살려내어야 할 영혼이 아니므로 ‘절박함’의 대상으로 보지 못합니다. 이 아이들은 지금 당장 예수님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고 여깁니다. 정말 그러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론을 완전히 뒤집으셨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예수님의 강력한 반박문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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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 나침반]믿음의 부모를 일으켜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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