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1(금)
 

이광천 장로(본문).jpg

한양교회와 남부민교회가 하나의 교회, 은성교회로 통합이 되었고 이 교회에 저 유명한 최상식(崔相湜) 목사가 새 담임목사로 부임을 해온 것은 1974년 8월 11일이었다. 그가 교회의 조원경 장로를 통해 청빙을 받아 담임목사로 부산 은성교회로 부임을 해왔던 당시의 나이는 48세였다.

당시 최상식 목사는 삼각산에서 100일 금식 기도를 한 후여서 그랬는지 영적으로 성령이 충만하였고 변화된 사람으로 말씀에 은혜와 능력이 넘쳐 있었다.

 최상식 목사가 부임을 하자 교회에는 새로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새 당회장의 부임과 함께 교회는 각부 부장의 개편이 있었고 그해 말에는 당회원의 책임분담도 새롭게 되었다. 재정부장에 이건호 장로, 관리부장에 조원경 장로, 교육부장에 박근성 장로, 전도부장에 도환호 장로를 임명했다. 그러나 최상식 목사가 하나의 교회로 통합이 되었다는 은성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을 했으나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못한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에서 새롭게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최상식 목사가 은성교회로 부임을 한 후의 첫 번째의 기도 제목은 우선 교회건축이었다.

낡은 것은 지나갔고 새롭게 되는 일 만이 그의 가슴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옛 남부민교회의 건물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현재의 교회당이 비좁기는 했지만 진정으로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서라도 새롭게 성전을 건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새 성전 건축과 함께 은성교회의 힘은 하나의 교회로 집약이 될 것이고 아름다운 성전의 완성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뀐 1975년 1월, 최상식 목사는 새해의 표어를 전도하는 해, 교육하는 교회, 봉사하는 성도로 정하고 열심히 가르쳤다.

당회에서는 새 성전 건축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여 이미 동의를 얻었다. 마침내 1월 26일에는 건축 기성회를 조직하고 2월 2일에 교회 앞에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최상식 목사가 부임을 하자말자 새 성전을 짓게 된 배경에는 모든 성도들의 단합된 힘이 그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최상식 목사의 목회가그냥 형식적이며 말로만 하는 목회가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목회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교인들을 사랑하되 진정 그 영혼을 사랑하였고 인간을 사랑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얼마나 교인들을 사랑하였는지 그 실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어느 날 이건호 장로의 부인 김순옥 권사가 어깨 쪽에 난 종기가 덧나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다. 구역 식구들과 함께 심장을 간 최상식 목사는 그 종기를 직접 손으로 짜주었는가 하면 급기야는 입으로 고름을 다 빨아내어 그 상처를 낫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뿐 만 아니었다. 청년들과 함께 야유회를 갔을 때의 일이었다. 청년 가운데 장원삼 집사가 그만 뱁에 물려서 위급한 지경에 처하였을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최상식 목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직접 입으로 그 독을 빨아내어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 입원 치료를 하게 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교인이든 교인이 아니든 이웃에 초상이 나면 언제나 제일 먼저 달려가서 시신에 염을 하는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 했던 것이다. 언제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교인들을 사랑했던 최상식 목사는 교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목회를 했던 참으로 보기 드문 목회를 한 참으로 보기 드문 목회자였다.

최상식 목사가 주도했던 성전건축이 완성이 된 것은 1979년 8월 31일이었다.

이렇게 새 성전을 건축하고 부흥과 발전을 거듭했던 교회에서 최상식 목사가 돌연 사의를 표명했던 것이다. 그가 교회에 사의를 표한 것은 잘못된 호적 때문에 나이가 정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목사 정년 70세가 원래의 나이보다 6년이나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최목사가 떠나는 김해공항에는 믿지 않는 동네 사람들이 전송을 나왔던 것을 보면 그는 과연 이 시대에 보기 드문 목회자였음을 알 수가 있다. 교회가 합동이 된 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산적한 교회에서 오직 겸손과 섬기는 자세로 일관되게 목회를 해왔던 그는 1991년 18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남은 여생을 다른 사역지에서 그 사명을 더하기 위해 은성교회를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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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회사 이야기 - 은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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