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기자들이 상대방으로부터 제일 많이 부딪치는 부분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에 관한 것이다. 요즘은 언론중재위가 있어 당사자끼리 중재하는 소위 ‘언론중재위원회’가 각 시도 단위마다 지역 중재소가 설치되어 있어 언론에 피해 입은 분들을 상대로 법적으로 중재해 준다. 이 언론중재위의 부장은 반드시 현직 부장 판사가 담당하게 되어 있는 준사법기관이다. 여기서 결정 나면 바로 손해배상도 가능하도록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필자는 근 50년간 교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언론중재회부는 수십 번 불러 다녔고 일반 사회 법정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수십 번 회부 되어 곤욕을 당한 경험이 많아 명예훼손하면 가히 법조인 이상으로 꿰뚫고 있다. 무슨 자랑도 아니고 벼슬도 아니고 그렇게 퍽 좋은 경험도 아닌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명예훼손이라는 말만 나오면 그냥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는 단골 메뉴다. 최근 월간 조선 2월호에 게재된 ‘조갑제의 시각’이란 코너에 실린 “전광훈 목사의 무죄를 선고한 허선아 재판부의 아름다운 판결문 해설” 기고를 읽어보고 느낀 점이 있어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보통 국민이나 일반 교인들이 알아 두면 좋은 내용이고 상식과도 같은 내용인 명예에 관한 법에 대한 것에는 무조건 일반 법정에 고소 및 고발을 먼저 하게 된다. 그러나 일차 법정에 가는 것 보다 서로 조정하는 기관이 언론 중재소다. 이 언론 중재는 법률적 효력 이상을 가지고 얼마든지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일반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광화문 집회 시 전광훈 목사의 강연 내용이 ‘문재인은 간첩이다’고 발언한 내용이 문제가 되어 고발을 당한 사건이 재판에 판결받은 것이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부분이다.
이 판결문에 의하면 이런 표현이 적시되어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부정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들은 있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표현들이 모두가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일정한 한계를 넘는 표현에 대해서는 엄정한 조처할 필요가 있지만, 자유 민주 체제 유지의 대전제는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담긴 대로 개인의 기본권을 신성시하는 자세이다.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공개토론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잘못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고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표현은 정말 멋진 수필감이다고 조갑제 씨는 대기자다운 표현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서 ‘이 숨 쉴 공간은 기자나 글 쓰는 분이나 또는 연설할 경우 매우 필요한 영역인데 표현의 미숙으로 언어의 구사 능력이 모자라 그만 숨 쉴 수 있는 언어의 한계가 충족시키지 못해서 그만 자기도 모르게 오버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글 쓰는 기자는 고의든 아니든 글의 구사 능력이 뒤떨어져 표현이 잘못 나갈 수 있는 부분이 바로 글의 혹은 연설의 말이 숨 쉴 공간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서 멈춰 버린 상태다.
지난번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혐의로 기소되어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던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살린 법리가 바로 ’숨 쉴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판결문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생존의 공간인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토론이나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더욱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번 전광훈 목사가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은 간첩이고 공산화를 시도한다’는 발언은 기본적인 국민의 권리 행사라고 판시한 것이다.
이 재판을 맡았던 허선아 판사는 김을동 전 국회의원의 며느리이자 독립운동가인 고 김좌진 장군의 딸의 며느리이자 손자며느리인 셈이다.
표현의 자유는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명문은 과거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서 유래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체포되어 판결받을 때에 주 대법원은 유죄를 내렸고,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그 생존을 위한 숨 쉴 공간을 가지려면 이 정도의 발언은 보호받아야 한다’며 피고 측의 손을 들어 석방된 사건이다.
허선아 판사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고 진보든 보수든 표현을 자유롭게 보장해야만 서로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보완할 기회를 가질 수가 있으므로 비록 양쪽이 서로에게 벽을 치고 비방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일반 국민은 그들의 토론과 논쟁을 보면서 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에서 이렇게 판결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보통사람들의 명예훼손 부분은 표현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될 수 있으나 공공적인 의미가 있는 사안의 경우는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인용한 것이다. 그 공적인 존재를 가진 대통령처럼 국가적·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국가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고 해석했다. 다만 이런 경우 표현행위는 적시된 기초 사실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수 있을 때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명예훼손 범위가 하도 까다롭기 그지없어 혹자는 이를 두고 ‘코에 걸면 되고 귀에 걸면 안 되고’라는 모호한 얘기를 법조계에서 자주 인용하는 지적이다. 특히 기자는 사실에 근거해서 공공의 이익과 공적의 판단에서 취재하여 글을 쓰는 것은 대부분 명예훼손죄로 약간의 반론 및 정정 보도를 하는 게 일반적인 관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