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4(수)
 
몇 주 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아홉 목숨을 빼앗은 범인에게 한 유족이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엄마를 안을 수도 엄마와 얘기를 나눌 수도 없지만 당신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를 기도하겠다”고 말이다. 
끔찍한 사건 재판 현장이 화합과 치유의 생생한 증언장이 됐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진한 용서의 힘을 1958년 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보여줬다. 당시 한국인 유학생을 죽인 흑인 청소년들을 용서한 유학생 부모인 부산 영도교회 故 오기병 장로이다. 오 장로는 “용서의 가장 큰 혜택은 용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를 구원한 그리스도의 사랑, 그 자체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58년 4월 25일 금요일 밤 9시경 미국 필라델피아주 펜실베니아대학 주변 해밀턴36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당시 26세)가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통으로 가던 중 흑인 청소년 11명이 달려들어 오씨를 에워싸 때리고 유리병을 깨트려 몸을 찔렀다. 정신없이 맞은 오씨는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오씨가 머물던 작은 아버지 오기항 목사의 집을 나선지 5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범인들은 근처에서 열리는 청소년 댄스파티 입장료 35센트를 마련하기 위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발생 이틀 만에 범인들은 붙잡혔고 다음날 아침 이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언론들은 대서특필하며 일제히 머리기사로 다뤘다. 사람들은 35센트 때문에 사람을 죽인 흑인청소년들을 비난했다. 당시 재판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배심원들도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11명 중 3명이 살인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필라델피아 시장까지 참여한 오인호 씨의 장례식은 수많은 조문객이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오기병 장로가 보낸 편지 한통이 미국을 울렸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죽은 오인호 씨의 아버지 오기병 장로의 편지였다. 오기병 장로는 부산 영도교회에 출석했으며, 한 때 유명했던 ‘영진보일러’로 돈을 꽤 많이 벌었던 믿음 좋은 시무장로였다.
오기병 장로가 보낸 편지에는 아들을 죽인 범인들에게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줄 것과 이들을 위해 가족들이 모금한 돈 500불을 보내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켜 기독교적 소망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들 인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고, 큰 충격과 비관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들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구원하고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를 통해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청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희생자 본인과 그의 가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교육적 빈곤이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가족은 이들이 석방된 뒤에 직업교육 및 사회적응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금을 적립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죽임을 당한 이와 죽인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며 우리를 기독교적 사랑과 친교 안에서 연결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성령으로 우리의 소망을 밝혔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 국민들과 특히 우리의 피붙이인 아들을 죽게 한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기병 장로(오인호 아버지)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을 감동의 물결로 덮어
오 장로의 사랑과 용서의 편지는 미국 사회를 다시 한 번 들썩이게 했다. 당시 언론들은 아들을 죽인 원수를 향해 용서와 사랑을 손을 내민 오씨의 부모를 보고 크게 감동했다. 5월 2일자 신문에는 “To Return Good for Evil(악을 선으로 갚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는 “In Ho Oh's parents to give $500 to help his stayers(아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위해 500불을 기부한 오씨의 부모님)”이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4면에 걸쳐 오씨와 그의 가족에 대해 보도했다. 

▲故 오기병 장로의 가문은?
오기병 장로와 그의 부인 한신현 권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통합 영도교회를 창립한 창립멤버이다. 이대운 장로의 부친과 함께 영도교회를 개척한 것이다. 그의 동생 오기항 목사가 미국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 사건 이후 사재를 들여 ‘오인호 기념 코리아센터’를 건립하고 오기병 가족이 보여 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계승하고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센터 일을 맡아오던 오 목사가 10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오인호기념센터’도 멈춰 있다. 건물은 잠겨있고 센터 공터에 잡초만 무성하다. 
오씨가 펜실베니아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다녔던 이스턴대학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씨의 희생과 그의 가족들이 보여 준 기독교적 신앙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지금은 오인호장학금을 만들고 도서관에 ‘오인호 기념 컨퍼런스룸’을 만들어 매년 오씨가 사고를 당한 4월 전후에 추모행사를 가져왔다. 지난 5월 12일에도 도서관에서 추모식이 있었다. 오인호씨는 미국에 유학가기 전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기독학생협동관에 <협조의 벗>에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영도교회 출신 중 서울대에 입학한 오인호와 구영철 목사(서울 브니엘교회 담임), 선교사 이춘모 목사(인도네시아)가 모두 서울대 출신들이다. 
오기병 장로의 아들 오덕호 목사(한일장신대학교 총장)도 경남고교를 나와 서울공대를 졸업했다. 오기병 장로는 27세때 최연소 시무장로가 되어 원로로 계시다가 영도교회에서 서울 연동교회로 옮겨 갔다.
오 장로는 한때 연탄을 주 원료로 하는 영진보일러를 발명해 한창 잘 나가던 기업인이었다.

▲1953년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교회를 세운 故 오기항 목사의 아들, 최초 한인 시의원
오기병 장로의 동생 오기항 목사의 아들인 데이비드 오(한국명 오승호)는 2011년 필라델피아 최초의 한인 시의원이 됐다. 지난해 1월엔 필라델피아 한인의 날(매년 1월 13일)을 제정했다. 오 의원은 아내 정희선 씨와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고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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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교회 故 오기병 장로의 가문은 미국을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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