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1-31(화)
 

 

지난 2020년 2월 24일 오후 3시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장공관 3층 국제회의실에서 27명의 기장 인사들이 모여 만우기념사업회를 조직한 가운데 만우 송창근 박사의 연구 발표가 있었다. 더구나 송창근 목사는 6.25사변 시절 인민군으로 부터 납북 되어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유일한 아들 고 송윤규 장로(소아과 의사, 부산아동병원 원장과 이사장을 역임)와 딸이 있다.

필자는 송윤규 장로로 부터 아버지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만우 송창근 목사는 1898년 10월 5일 함경북도 경흥에서 출생하여 1910년 북간도 명동소학교, 명동중학교, 광성중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14년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을 만나 “너는 본국에 돌아가서 목사가 되라”는 말을 듣고 1916년 서울 피어선 성경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 이후 남대문교회 조사를 하다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6개월 했다. 그리고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신학박사를 받고 귀국하여 1939년 조선신학원 설립에 착수하여 1940년 4월 19일 정식 조선신학원이 설립 되었다. 이 뿐 아니라 신학계의 거목 한신대의 학장을 지낸 정대위 박사와 김정준 박사를 인물로 끼웠다.

만우 장학회가 있어 금년에도 김평화 대학원생이 받았다. 송창근이 없었다면 김재준 목사도 없었고 오늘의 기독교장로회 교단이 생기지도 아니 했을 것이다. 기념사업회 회장이 서재일 목사(원주영강교회 원로)이고 공동회장이 신익호 목사(초동교회 원로)와 송유정 이사(애광원), 박진구 목사이다. 실행위원장이 김원배 목사(꿈동산교회 원로)다. 한국의 에큐메니칼의 선구자 강원룡 목사는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을 인사는 송창근 목사와 김재준 목사의 만남이다. 오늘의 한국 정치사에 민주화의 초석이 되고 밑거름이 되어 한국사회와 교계에 끼친 영향은 기념비적 인물로 길이 남을 인물이 틀림이 없다”고 그의 영향력은 위대하다고 격찬한 강연을 들었던 적이 있다. 이들이 남긴 인물은 한국 교계에 위대한 믿음의 유산을 남기고 하늘나라에 소풍 갔을 것이다.

만우 송창근의 전기편에서 극작가 주태익씨는 “만우는 유능한 젊은이를 찾아 인재를 양성한 것은 마치 예수가 사람을 낚는 어부 베드로를 제자 삼았던 거와 비슷하다”고 말하고는 “민족의 앞날에 인재가 필요함을 일찍이 예견했던 분이다”고 말했다. 송창근 목사는 “십년지계를 위해서 나무를 심고 백년지계를 위해 사람을 기르자”는 말을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들을 보면 그의 말의 참 뜻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훗날 부산 동래산성 출신 김정준 박사는 “송창근이란 인물에 대해 미쳐있었다”고 할 만큼 흠뻑 젖어 있었다.

송 목사의 아들 송윤규 장로도 아동병원을 위해 미국 자선 단체로 부터 많은 기부금을 받아왔다. 장기려 박사가 이사장한 후에 바통을 받아 이사장을 하면서 지금은 부산 기장 정관에 사회복지법인으로 전환하여 김동수 장로가 이사장으로 노인양로원을 만들어 이광혁 장로(93세)가 맡아 성실히 운영하고 있다. 이를 잘 아는 분은 부산기독교사회관 관장을 역임했던 박순옥 감리교 권사로, 이사를 맡아 오랫동안 교분이 있어 송윤규 박사에 대한 가족력을 잘 알고 있다. 송 장로도 미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부산영락교회를 박영희 장로와 한경직 목사가 6.25 부산 피난 시절에 교회를 개척한 일대 사역자들이다.

만우 송창근 목사가 있어서 장공 김재준 신학자로 인해 오늘날 한국신학대학 지금의 한신대학교가 되었고 그 첫 밑거름이 된 것이 만우 송창근 목사가 아니었던가. 이 두 분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하늘이 맺어준 계획과 섭리로 하나님의 예정된 시간표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부족한 필자는 잠시 부산중부교회에 몸담았던 기장 정신이 “행동하는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 목사와 같이 70~80년대 살아있는 이 시대의 예언자 교단인데 지금은 약효가 다 되었는지 이 시대적 사명 앞에 정치적 감투나 명예 앞에 맥을 못 추고 나약한 약골로 변신 된 것이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이야 말로 사회주의로 가는 여당 행태에 “여기 어느 누구 사람 없소”하고 송창근 목사가 장공과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아닌가?

아예 이 민족의 흘려가는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서 그 어느 누구 하나 소리치고 민주화 외침 때에는 그렇게 흔하게 감옥에 갔던 그런 용기 있는 기장 지도자들은 다 어디에 무얼 하는지? 한심하고 통탄할 지경이다.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너 아우 아벨이 지금 어디 있느냐 할 때 내가 아벨의 지키는 자입니까?”로 들릴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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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송창근 목사)와 장공(김재준 목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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