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세계에는 역설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보통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강한 것이 좋고, 큰 것이 좋고, 센 것이 좋은 것 같지만 오늘 성경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약한 것을 자랑한다. 약할수록 나는 강해진다. 내가 약할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내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로마서 8장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보혜사 성령님, 내가 약할 때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표현되기를 연한 순과 같고, 예수님은 자라날 때 무슨 아름다운 모양이나 풍채가 없다 하십니다. 가녀린 잎과 같이 연한 순과같이 자라나 세상 죄를 지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 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도우심으로 연약과 부족함을 친히 혼자 담당하셨습니다.
본문 9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족 하도다 내 능력이 약한대서 온전하여 진다. 그러므로 도리어 내가 크게 기뻐하는 것은 내 여러 약한 것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안에 머물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그 시대 최고의 스펙과 학벌을 자랑하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사도바울이 본문에 와서 「내 그런 것 들은 다 배설물처럼 여기고 십자가만 자랑한다. 약한 것만 자랑한다.」 합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우리가 긴 세월을 살다 보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일이 많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 같지만 살아남는 자가 강합니다. 강한 이빨은 부러지기 쉽지만 부드러운 혀는 절대 안 부러집니다. 우리가 일부러 약할 것은 없지만 약한 것이, 없는 것이, 약점이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고 숨길 것도 아니고, 창피 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펙을 자랑하고 자기 학벌을 학위를 자랑할수록 부질없는 것입니다. 돈을 천억을 만졌다고, 나라의 높은 고관대작을 차지했다고 누가 존경 할까요? 아무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내가 자랑하고 애지중지 하는 게 무엇일까요? 내가 부끄러워하고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은 「약한 그때가 강함이라」고 합니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내 몸에 아픔이 있기 때문에 건강에 신경을 더 쓰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럴 때 생사화복, 흥망성쇠,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주관자 되시는 주님께서 찾는 자에게 상주시고 두드린 자에게 열어주십니다.
약할 때 강한 은혜세계를 자랑하고, 세상의 부러울 것이 없고, 황제 앞에 서든지 어디 가든지 도도하고 당당하게, 거침없이 살아간 바울처럼 약점이 많고 부끄러움 많고 골치 아픈 일들이 많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사건보다 해석이 중요한, 성경적인 프리즘을 가지고 살아가야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 찬송하는 사람, 성경을 보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재해석 되어야합니다. 더 이상 자랑하던 것을 내려놓으시고 부끄러워하던 것을 반대로 해석하십시오. ‘하나님 내게 복 주시려고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 사도바울이 삼세판 기도해도 낫지 않은 그 지병 때문에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 병을 오히려 감사하는 겁니다. 내 은혜가 오히려 내게 족하다. 내가 아프니까 겸손해지는 겁니다. 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문제를 기도제목 삼아버리면, 쓴물이 단물이 되고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되고 근심거리가 간증거리가 되는 걸 기억하여 약점마저도 자랑하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서 8장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보혜사 성령님, 내가 약할 때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표현되기를 연한 순과 같고, 예수님은 자라날 때 무슨 아름다운 모양이나 풍채가 없다 하십니다. 가녀린 잎과 같이 연한 순과같이 자라나 세상 죄를 지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 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도우심으로 연약과 부족함을 친히 혼자 담당하셨습니다.
본문 9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족 하도다 내 능력이 약한대서 온전하여 진다. 그러므로 도리어 내가 크게 기뻐하는 것은 내 여러 약한 것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안에 머물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그 시대 최고의 스펙과 학벌을 자랑하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사도바울이 본문에 와서 「내 그런 것 들은 다 배설물처럼 여기고 십자가만 자랑한다. 약한 것만 자랑한다.」 합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우리가 긴 세월을 살다 보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일이 많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 같지만 살아남는 자가 강합니다. 강한 이빨은 부러지기 쉽지만 부드러운 혀는 절대 안 부러집니다. 우리가 일부러 약할 것은 없지만 약한 것이, 없는 것이, 약점이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고 숨길 것도 아니고, 창피 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펙을 자랑하고 자기 학벌을 학위를 자랑할수록 부질없는 것입니다. 돈을 천억을 만졌다고, 나라의 높은 고관대작을 차지했다고 누가 존경 할까요? 아무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내가 자랑하고 애지중지 하는 게 무엇일까요? 내가 부끄러워하고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은 「약한 그때가 강함이라」고 합니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내 몸에 아픔이 있기 때문에 건강에 신경을 더 쓰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럴 때 생사화복, 흥망성쇠,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주관자 되시는 주님께서 찾는 자에게 상주시고 두드린 자에게 열어주십니다.
약할 때 강한 은혜세계를 자랑하고, 세상의 부러울 것이 없고, 황제 앞에 서든지 어디 가든지 도도하고 당당하게, 거침없이 살아간 바울처럼 약점이 많고 부끄러움 많고 골치 아픈 일들이 많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사건보다 해석이 중요한, 성경적인 프리즘을 가지고 살아가야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 찬송하는 사람, 성경을 보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재해석 되어야합니다. 더 이상 자랑하던 것을 내려놓으시고 부끄러워하던 것을 반대로 해석하십시오. ‘하나님 내게 복 주시려고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 사도바울이 삼세판 기도해도 낫지 않은 그 지병 때문에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 병을 오히려 감사하는 겁니다. 내 은혜가 오히려 내게 족하다. 내가 아프니까 겸손해지는 겁니다. 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문제를 기도제목 삼아버리면, 쓴물이 단물이 되고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되고 근심거리가 간증거리가 되는 걸 기억하여 약점마저도 자랑하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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