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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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기도하라고 분부하셨다. 벌써 김광일 장로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5년째 되는 날인 5월 24일(주일) 오후, 그가 섬겼던 부산중앙교회당에서 5주기 추모예배를 드린다. 매우 그리운 김광일 장로의 얼굴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김 장로는 가정과 그가 섬겼던 교회(부산중앙교회)에 헌신했으며, 변호사로서 약자들,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들에게 한 없이 베풀었고, 나누었고, 배려했고, 불의와 싸웠다. 그의 생애가 너무 짧았던 것 같아 아쉬움이 앞선다.  
필자가 1980년대 교계언론의 현실에서 견디며 살아왔던 것은 김 장로의 사랑과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변호사로, 야인으로 살았던 삶은 늘 한결 같았고, 차별 없이 남을 배려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었다. 
김 장로는 이 땅의 정의와 공의를 위해 한 몸을 바친 거룩한 십자가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남이 억울함을 당했을 때 무료로 변론을 담당했다. 특히 억눌린 약자의 편에 서서 변론하고 헌신해온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 그 자체였다. 
불의와 맞섰다. 고통당하는 국민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민주인사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부마항쟁의 불씨를 제공한 주역이었다. 이 땅의 양심적인 젊은이들에게는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늘 다정하게 보듬었고, 지원했고, 용기를 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필자가 잊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한국교회 특히, 부산교계 특정교단의 불의 앞에 교계언론을 통해 교계정화운동을 펴 교계 정치꾼들에게 경종을 울린 사건들로, 그 때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대표적으로 국제신문 ‘국제춘추’란에 ‘가룟유다예찬론’을 기고해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하나의 자극제로 신선한 충격을 준 사건이 있다. 교계 정치판도를 바꿀 만큼 썩어가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역설적인 필체로 가룟유다를 예찬하는 글을 썼다. 그 바람에 김 장로(글을 썼던 당시에는 집사였다)가 장로 피택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교회까지 압력을 넣어 징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한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일로 결국 故 노진현 목사를 지지하는 일부 인사와 반대쪽이 갈라서게 됐고, 새중앙교회(지금의 호산나교회)를 개척하게 된 계기가 됐다. 
지금의 부산중앙교회가 전통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과 같이 진리로 쾌거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산중앙교회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중구 대청동에서 지금의 넓은 터전인 수영구 남천동으로 옮겼다. 한국교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교회가 잘 되기만 기도해 왔고 한국 교계가 바르게 서나가기를 염원한 故 김광일 장로는 볼품없는 필자를 도와 교계신문을 한때 운영, 관여하면서 부산지사장을 맡았었다. 이것도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의 섭리이지 않았을까. 사도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던 김광일 장로의 고백처럼 그를 추모하고 싶다. 이 땅의 민주화와 한국교회, 특히 섬겼던 부산중앙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을 줄 알고 있다. 
故 김광일 장로가 영원한 진리 앞에, 작은 일에도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영원한 나라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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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광일 장로님이 그립습니다…(5주기를 추모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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