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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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게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단 한 번도 자신들이 가나안에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당연히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이들은 가나안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단지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광야로 가겠다고 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모세와 아론이 강조한 것은 자신들이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킬 것>이라고 했고, 이것을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모세와 아론에게 중요한 것은 가나안이라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는 것, 제사를 드리는 것, 종합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이 광야로 사흘 길 쯤 가서 절기를 지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머물던 고센에서 가나안까지는 가장 빠른 길로 가도 열 하룻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흘 길쯤 가서 절기를 지키겠다는 것은 광야 한 복판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들은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광야든, 가나안이든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다는 그 자체였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 신앙에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부록인 <소요리문답> 제 1문항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람의 존재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는 것이며, 그 분이 계심으로 인해 한없이 즐거워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가 광야에 있든지, 가나안에 있든지, 그 장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간과합니다. 그리하여 출애굽의 목적에 대해 오해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출애굽시킨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자유는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게 하는 도구였을 뿐,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자유가 목적이 되면 방종으로 흘러 범죄하게 될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이 자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마음대로 하여 범죄한 것이 그 예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출애굽의 목적을 <가나안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도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 땅에서 얻은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가나안이라는 땅을 목적으로 여기면 기복적 물신주의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광야에 있든지, 가나안에 있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길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그들의 존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면 거기가 축복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비록 가나안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다면, 거기가 멸망의 장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면서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광야를 벗어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가나안처럼 모든 조건이 좋지 못해도,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어도, 그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면 그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풍족해도 하나님을 제대로 경배하지 않는다면 그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높이고 경배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비록 가난해도, 병들었어도, 어려운 환경에 있어도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도록 힘쓰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그에게는 광야도 가나안이 될 것입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높이는 행복한 삶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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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가나안보다 중요한 것(출애굽기 5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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