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8(화)
 
: 도마, 사진-신학(Photheology)의 세례요한
 
매화
절벽에 매화 한 그루 바위틈에 끼어 있구나
그렇게 구차하게 살아도 좋다하네
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라네
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란다네
꺼꾸로 매달려도 제 멋 제 철을 못 이기어
눈 쌓인 그 사이로 방긋이 피었구나
멋없는 잣나무들이사 그 마음을 어이 안다하리
절벽에 매화 한 그루 바위틈에 끼어 있구나
그렇게 구차하게 살아도 좋다하네
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라네
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란다네
- 김인곤 작시, 김규환 작곡
 
1. 매화예찬: 부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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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매화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한다. ‘겨울철의 세 벗’이라는 뜻으로 흔히 한 폭의 그림에 그려서 ‘송죽매(松竹梅)’라고 한다. ‘지조 있는 선비인 군자’를 상징하기도 하며 ‘탄탄대로를 걷다 인생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도 변치 않고 찾아주는 친구’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세한삼우 가운데 매화와 대나무에 국화와 난초를 더한 것을 매란국죽(梅蘭菊竹)’이라고 한다. 이 4가지 초목과 꽃을, 기품이 있고 고결한 군자와 같다 해서 사군자(四君子)라고 한다. 이들은 춘하추동의 순서대로 이 험난한 한반도 땅에 피어나고 자라고 있다. 특히 사군자 가운데 매화는 다섯 장의 순결한 백색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며 그 모습이 애처로우나, 은은한 향기를 지녔다. 매화의 꽃말은 ‘인내, 품격, 기품’이라고 한다.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매화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찬서리를 이겨내는 강인한 성정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가는 선비의 의연한 자세와 닮았다 하여 군자의 꽃인 것이다. (경남의) 아이들은 눈치 밥 때문에, 어머니들은 가정 형편 때문에, 아버지들은 퇴직 때문에, 청년들은 일자리 때문에 이래저래 힘든 세상살이이다. 그럴수록 매화와 같은 고결한 지조로써 힘든 겨울을 이겨내는 강인함이 그립다. 외세의 억압에도 굽히지 않고 불의에 물들지 않으며 오히려 맑은 향을 주위에 퍼뜨리는 매화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순절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게 된다.
 
2. 아우라 없는 예수: 사진 신학(Photheology)의 세례요한, 도마
요한복음 20장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 모임에 없었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시어 도마에게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확인시켜 주시며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고 고백한다.
사진 미디어는 인간의 ‘감성적 측면’과 ‘이지적 측면’을 종합하는 기능이 있다. 만지고, 찍고, 보는 기능은 미디어의 감성적 측면이 강조되는 반면, 말하고, 전시하고, 회상하는 기능은 이지적 측면이 강조된다. 도마는 감성적인 인간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를 자신의 손으로 만져야말 했다. 또 눈으로 보아야 했다. 이런 감성적인 인간이었던 도마는 그의 복음서에서 감성을 넘어선 깨달음의 경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예수에 관한 전통적인 아우라(aura)가 벗겨지지만 또 다른 신앙의 신비를 우리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사실, 114개의 어구로 이루어져 있는 <도마복음>은 동양적이고 신비적인 색채를 지녔다. 신약 성서의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예수를 신의 대변자나 신의 아들이라기보다는 깨달음에 이른 영적 스승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도마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자들 각자의 내면의 자각을 통해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곧,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중기만의 도구’로 대중문화를 비판했던 미학자 아도르노와 달리 발터 벤야민은 대중문화를 문명의 진보를 위한 도구로 본다. 따라서 벤야민은 사진 미디어를 통해 원본과 복제본의 관계, 기술과 마술, 현실과 초현실 간의 관계에 대해 논하는데, 사진에는 일반 회화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본다. 베일에 가린 채 먼 곳에 놓여 있던 종교적, 권위적 및 전통적 아우라(벤야민에게 있어서 아우라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느낌, 작품을 대하는 주체가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종류의 거리이다)는 사진과 같은 ‘순간의 미학’에 의해 클로즈업되고 복제되어 만인에게 전시되고 공개될 때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가깝게 다가 온, ‘벗겨진 아우라의 새로운 현실’은 또 다른 신비체험을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일방적이며 폐쇄적인 전통적 아우라는 사라졌지만, 사진 미디어를 통해 도달한 경험 세계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현실과 추상 간의 긴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우라란 예술 작품이 원본이라는 대상적 속성과 결부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예술 작품을 대하는 주체의 주관적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성이 이지적으로 전환되는 시점을 깨달음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도마는 사진신학의 세례요한이다. 그에게서 우리는 아우라 없는 예수를, 그러나 나만의 예수를 발견하게 된다.
 
3. 매화 예수
 2000년 전 부활하신 예수는 김인곤의 시와 같이 절벽 바위 틈 매화 한 그루의 모습에서 세상 죄 지고 가신 어린양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혹은 세상을 비껴 서서, 사람을 굽어 보는 매화에게서 우리는 도마가 들려주는 예수의 진솔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눈 쌓인 바위 틈으로 방긋이 피어나는 매화는 십자가 고난을 이긴 부활의 예수를 우리들에게 그려준다. 인생의 험난한 길을 걷다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도 변치 않고 찾아주는 친구인, 아니 아예 죄인들의 친구인 예수는 매화를 통해 우리들에게 변치 않고 다가온다. 자, 지금 그 순간을 찍을 준비가 되었는가? 늦으면 늦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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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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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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