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에게 알려진 것은 안식 후 첫날 새벽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예수님께 향품을 발라 드리기 위해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의 부활을 알게 되었고, 그 후엔 제자들이 무덤에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고, 나중에는 오백 여명의 사람들에게 일시에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복음은 이 부활 사건 위에 기초하여 선포되었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은 안식 후 첫날 이루어진 것일까요? 여기엔 귀중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 날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이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말씀된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는 대로 거룩한 날이었습니다.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일을 중지하고 쉬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몸과 마음이 모두 안식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안식 후 첫 날 전해진 것은 그 전 날의 안식이 거짓 안식임을 밝히고, 비로소 진정한 안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안식일라 여기던 그 날은 어떤 날이었습니까? 우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빌라도 총독 등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이 아닌 로마인이었기에, 그저 모든 유대인들이 쉬기 때문에 총독도 업무를 쉬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 날 내내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일로 마음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도 이 날 쉬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안식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날 내내 십자가 처형 사건이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고, 또 예수님께서 평소에 예고하신 대로 부활하실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군인들을 무덤에 보내 지키게 했고, 하루 종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 참된 안식이 있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이들에게도 참된 안식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선 제자들은 사랑하던 선생님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메시아로 고백하고 믿었던 분을 배신한 죄책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화가 미칠까 두려워 모인 곳의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형 이후에 예루살렘의 분위기가 어떻게 될까 염려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서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아닌 일반 주민들은 어떠했을까요? 그들 모두도 안식일이 되었을 때 하던 일을 중단하고 쉬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참 안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의 집에서는 아이가 아파 고통 받았을 것이고, 어떤 집에서는 가족이 죽었을 것이며, 어떤 집에서는 분노로 가족 간에 갈등을 빚었을 것입니다. 그 날은 이름은 안식일이어서 모든 일을 그치고 쉬고 있었지만, 참된 안식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짓 안식이 끝난 다음 날 새벽 온 세상에 진정한 안식이 선포되었습니다. 그 진정한 안식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죽음이 예수님의 부활로 극복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더 이상 죽음은 사람을 위협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죄책감에 몸부림치던 제자들을 용서하셨고, 그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의 모든 거짓된 안식에 속고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진정한 안식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거짓 안식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다 준 참된 안식을 누리며 살길 기원합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은 안식 후 첫날 이루어진 것일까요? 여기엔 귀중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 날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이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말씀된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는 대로 거룩한 날이었습니다.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일을 중지하고 쉬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몸과 마음이 모두 안식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안식 후 첫 날 전해진 것은 그 전 날의 안식이 거짓 안식임을 밝히고, 비로소 진정한 안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안식일라 여기던 그 날은 어떤 날이었습니까? 우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빌라도 총독 등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이 아닌 로마인이었기에, 그저 모든 유대인들이 쉬기 때문에 총독도 업무를 쉬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 날 내내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일로 마음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도 이 날 쉬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안식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날 내내 십자가 처형 사건이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고, 또 예수님께서 평소에 예고하신 대로 부활하실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군인들을 무덤에 보내 지키게 했고, 하루 종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 참된 안식이 있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이들에게도 참된 안식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선 제자들은 사랑하던 선생님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메시아로 고백하고 믿었던 분을 배신한 죄책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화가 미칠까 두려워 모인 곳의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형 이후에 예루살렘의 분위기가 어떻게 될까 염려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서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아닌 일반 주민들은 어떠했을까요? 그들 모두도 안식일이 되었을 때 하던 일을 중단하고 쉬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참 안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의 집에서는 아이가 아파 고통 받았을 것이고, 어떤 집에서는 가족이 죽었을 것이며, 어떤 집에서는 분노로 가족 간에 갈등을 빚었을 것입니다. 그 날은 이름은 안식일이어서 모든 일을 그치고 쉬고 있었지만, 참된 안식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짓 안식이 끝난 다음 날 새벽 온 세상에 진정한 안식이 선포되었습니다. 그 진정한 안식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죽음이 예수님의 부활로 극복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더 이상 죽음은 사람을 위협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죄책감에 몸부림치던 제자들을 용서하셨고, 그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의 모든 거짓된 안식에 속고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진정한 안식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거짓 안식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다 준 참된 안식을 누리며 살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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