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들의 임기 만료로 교체를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이사를 파송한 총회와 고려학원 간의 갈등이 엿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를 둘러싼 서로간의 이익 다툼이다. 각계각층에서 말들이 무성하고, 언론에서도 말들이 무성하다. 서로간의 이익에 의한 의견이기에 모든 말들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수긍할 수 없는 말들도 있다.
혹자는 고신 교단의 역사를 말하면서 “고려신학교는 계속 세속화의 길을 걸어왔다. 고려신학교가 고신대학으로, 고신대학에서 고신대학교 즉 일반대학교로 발전(?) 돼 왔다”고 말했다. 고려신학교에서 고신대학교, 그들이 말하는 일반대학교로 전환된 것이 세속화된 것인가?
고신대 강단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창조, 타락, 구속의 관점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라고 가르친다. 교회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가? 교회는 거룩한 곳 세상은 악한 곳으로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라고 가르치면서, 신학교에서 일반대학교로 전환되었다고 세속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이 세속화 되었다고 말하는 고신대학교에 입학해서 예수를 믿는 학생들, 그리고 신학대가 아닌 인문계열, 자연계열 학과에서 부르심을 발견하고 목회를 시작하는 학생들. 그럼 이들은 무엇인가? 고려신학교에서 시작하여 고신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은 전혀 없는가? 정말 목회자만 배출하는 신대원만 중요하고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교는 중요하지 않는가? 신대원만 ‘선지학교’이고 학부는 세속학교인가? 이런 시대를 거스르는 발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교단의 총회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법 역시 중요하다. 어느 것이 우위냐고 말하기 전에 서로를 보완하는 대책이 무엇인지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 총회법이 중요하니 국가법은 무시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정작 그렇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총신대 사태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일천번제를 드리면서까지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였다. 우리에겐 넓은 곳을 보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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