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5(목)
 
탁지일 교수.JPG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개혁의 주체’인가, ‘개혁의 대상’인가? 교회를 향한 한국사회의 비판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단들은 양의 옷을 입고 종횡무진 과감한 노략질을 저지르고 있다. 마치 자신들이 타락한 교회의 대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움직이며, 건전한 사회봉사단체의 가면을 쓰고 국내외 곳곳에서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
‘이단 대처’는 일면 ‘교회 정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다.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개혁 주체’의 몸부림이다. 로마가톨릭교회에 속했던 종교개혁자들이 원했던 것은 ‘교회분열’(de·formation)이 아니라 ‘교회갱신’(re·formation)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를 신앙했다. 교회는 예수만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기로 약속한 이들의 연합이다. 설령 예수 신앙으로 인해 박해받더라도 ‘배교의 길’이 아니라 차라리 ‘순교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오직 그리스도’를 세상에 선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단들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교회의 성경공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지만, 이단들의 교리교육은 결국 교주의 신격화에 맞춰져 있다. 신천지는 이만희를 “주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신격화한다.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을 “재림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그리고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신격화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단들은 노골적으로 망령되게 일컫는다.
똑똑한 이단 교주들은 자신이 얼마나 신적인 존재인지 가르치지 않는다. 신도들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가르친다. 결국 신도들은 자신들이 죄인인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죄를 지적하는 교주는 점점 상대적으로 신격화되어가는 것이다. 세뇌를 통해, 교주의 주장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바라보는 능력은 상실되고, 오로지 ‘순종과 불순종’의 관계로만 받아드리게 된다. 이때로부터 이단 교주의 사리사욕이 합법적으로 충족되기 시작한다. ‘헌신’의 이름으로 합법적인 ‘착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심지어 교주가 사망하더라도 이단을 떠날 수 없다. 지인들과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이단 교주가 사망하면 공황상태에 접어든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과 인생이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교주의 죽음을 신격화하고 미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즉 애처로운 자기합리화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을 연구하면, 동시대 교회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즉 이단은 교회의 반면교사인 것이다. ‘사회봉사의 가면’을 쓰고 영향력을 확대해 나아가는 이단들을 통해, ‘이웃 사랑’의 거룩한 의무를 등한시 하는 교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게 된다.
‘개혁 주체의 몰락은 예견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개혁 주체의 회복은 예정된 것’이다. 이단들은 교회사 가운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 왔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늘 승리해 왔다. 우리는 영원한 주님의 교회에 속한 기쁨 가운데, 단호하고 담대하게 이단에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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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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