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8(목)
 
허순길 목사.jpg▲ 고 허순길 박사(1933~2017)
 지난 12일 오전 10시 고신대복음병원 영안실에는 고 허순길 박사(향년 85세)의 장례예식이 있었다. 허 목사의 두 아들과 첫째 딸과 사위, 그리고 평소 친자식이상으로 따랐던 조카 허창수 목사 등 순수 가족장으로 장례식을 드렸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은 공적인 예배로 드리지 않고 세상적인 영정 헌화나 조의금도 받지 않고 약력 소개 및 조사도 없이 순수한 장례식은 이색적이었다. 개혁교회는 교회적인 장례를 인정하지 않고, 죽은 자를 위해서는 하나님은 전혀 책무를 주지 않았던 평소 개혁주의 신앙정신에 따라 살아서 죽었을 때를 대비하여 가족들에게 유언으로 남겼다.
이날 가족장에는 그의 가르침을 받은 이환봉 전 고신대 교수, 김순성 전 신대원장, 변종길 전 원장 등 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카 허창수 목사의 사회로 진행했다. 허창수 목사는 “허 목사님께서 개혁주의 신앙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쳤던 대로 모범을 보이고 실천하고자 장례식은 예배가 아니라 장례예식으로 드린다”고 서두에 말하면서 가족장으로 사회를 드리게 되었다고 이해를 구했다.
찬송가 305장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가사가 말해주듯 변종길 신대원장은 기도를 대표하여 드리면서 “평소 허 목사님은 거룩한 열정으로 후학을 위해 충성하시다가 때로는 외롭고 지친 삶 가운데서도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으로 가르쳐왔다면서 개혁주의 사랑과 신학대학원의 육성에 힘 바쳤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하고 못다 이룬 거룩한 열정을 후배들이 실천할 것을 다짐하겠다고 기도했다.
그의 사촌 동서인 이한석 증경총회장은 요한복음 11장 25~27절 말씀을 통해 이 장례식은 나사로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이 이 자리에 함께 하시는 것 같다고 전제하고 고인의 유언대로 화려한 약력이나 조사도 하지 말고 오로지 예수그리스도만 증거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유언을 전했다.
이 목사는 80 평생 영정이나 조화도 없이 꾸밈도 없는 이런 장례는 처음본다고 말했다. 마치 노숙자의 장례와 흡사하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태국에서 사는 큰 아들, 미국에서 사는 둘째 아들, 그리고 캐나다에 사는 큰 딸과 사위만 참석하고 화란에서 작은딸이 노환으로 모시고 있는 사모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의 큰 아들 성진 씨는 인사말로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셔서 어둠에서 빛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장례를 치루게 한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허 목사는 말년에 부산에서 홀로 살면서 총회와 후학을 위해 많은 글을 남겼다. 마지막 날까지 개혁주의 질서 해설 책 내용 중에 제46조 장례부분을 해설해 놓고 출판직적에 하늘나라로 가면서 내 장례는 이렇게 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책 속의 내용에서는 ‘개혁주의 교회는 교회적인 장례는 인정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교회 장례는 불필요하다’, ‘교회는 산자와 더불어 일하고 산자를 위해 일한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에 산자를 위해 분명한 책무를 주었지 죽은 자를 위해서는 전혀 책무를 주지 않았다’,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교회에 의한 어떤 일도 이상 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등이 강조하고 있다. 그는 미리 자신이 당할 장례식은 이렇게 하기를 손수 실천해보이도록 책 내용에 강조해 놓았다. 그리고 자녀, 친척에게 꼭 이렇게 하라고 유언으로 남겨놓고 하늘나라로 갔다.
고신교단 총회 산하 세 박사(홍반식, 이근삼, 오병세)가 교단 설립 초창기의 고려신학교에 이들 세 박사가 주동이 되어 후학들을 양성했다면 제2기에는 화란에서 유학하고 온 허순길 박사가 후학들을 위해 고려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때 화란 캄펜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한 차영배 목사와의 갈등과 고 전은상 목사와의 사이에 일어났던 잡음이 끊이지 아니해도 늘 개혁주의 신앙관을 고집하면서 고신인 다운 삶을 살았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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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에 이런 순수한 장례예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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