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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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국선교회’ 최태민의 사리사욕 때문에 변질
 -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전국에 야간무료의원 개소
 - 한국교회, 목회자들 최태민에게 이용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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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혼란스럽다.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 씨(본보는 최태민씨가 신학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목사라는 호칭을 생략한다)와 관련한 문제들도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들은 사건의 발단을 1975년 최태민 씨가 박근혜의 후원으로 조직한 대한구국선교회(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라고 지목하고 있다. 이후 대한구국선교회는 1976년 구국봉사단으로 개칭하게 되며, 1979년 새마음봉사단으로 다시 개칭했다가 전두환 정권 때 해산하게 된다. 비록 해산을 했지만 구국선교회가 뿌린 씨앗들 중 유일하게 꽃을 피운 곳이 있다. 부산에서 운영중인 한국경로복지회(회장 변창남 목사)다. 

•“시작은 순수했다”
변창남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구국선교회를 욕하고 있지만, 초창기 선교회는 정말 순수했다. 최태민 그 사람이 선교회를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 목사가 설명하는 구국선교회 초창기는 이러했다.
74년 당시 국제정세가 많이 혼란스러웠다. 당시에는 ‘반공’과 ‘구국’이 필요한 시대적 상황이었다. 이것을 잘 이용한 사람이 최태민이었다. 최 씨가 박근혜의 후원으로 1975년 대한구국선교회를 조직한 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당시 성결신학교 부지)에 서울야간무료의원을 개원했다. 야간무료의원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에 일을 해야 했고, 몸이 아파도 병원을 다닐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야간무료의원은 영세민과 서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얻을 때였다. 
그런데 76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이 박근혜와 함께 불시에 야간무료의원을 방문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야간의원에 온 엄청난 인파를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밤 10시쯤 박정희 대통령은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병원은 많아도 돈 없는 사람들이 갈곳이 없다. 지방 의사회의 도움으로 (야간무료의원이)전국적으로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16개 시도에 야간무료의원 추진이 시작했다. 변 목사는 “이때까지만 해도 선교회가 정말 순수했다. 영세민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했고, 이런 순수함에 박정희 대통령도 큰 감동을 받은 것으로 안다. 그리고 무료진료소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에도 무료의원 개원
당시 구국선교회 부산시 단장이 변창남 목사였다. 변 목사는 야간무료의원 설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박정희 대통령 지시 후 한 달 뒤) 청와대 제2부속실에서 전화가 왔다. 큰 영애가 부산으로 내려가니, 수영공항에 마중 나오라는 지시였다. 당시 구국선교회는 십자군이라고 해서, 군복에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단장인 변 목사는 별이 세 개였다. 수영공항에 마중나가니, 박영수 부산시장과 구용현 교육감, 법원장, 검사장 등이 나와 있었다. 수영공항에서 박근혜는 변 목사를 가장 환대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래관광호텔 식사에 초청했고, 이 자리에서 야간무료의원 개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모든 의료기구, 집기비품은 박근혜가 담당키로 했고, 부산시장에게는 의원 운영비 지원을, 그리고 교육감에게는 무료의원을 운영할 수 있는 장소를 지원토록 협의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초량에 위치한 부산공예고등학교 별관에서 영세민을 위한 부산야간무료의원을 개원하게 된다. 부산야간무료의원은 77년 5월까지 진료를 하고, 잠시 폐업을 하게 된다. 정부의 의료시혜 실시로, 폐업을 한 뒤 6월부터 영세민과 노인들을 돌보는 경로의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부산만 살아 남다
경로의원은 무료진료를 실시했기 때문에, 부산시의 운영비 지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부산시 운영비 지원도 계속 줄어들어 변 목사는 경로의원을 법인화했다. 전국 16개 시도에 야간무료의원이 운영되었지만, 법인화는 부산이 유일했다. 서울조차도 법인화를 못했다. 변 목사는 “서울은 법인화를 시도했지만, 법인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 서울 단장이었던 최태민이 무료의원 법인화보다 혈액원 허가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 목사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최태민이 복지부에 혈액원 허가를 요청하고 있었다. 담당공무원도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결국 그게 뜻대로 되지 못했고 야간무료병원 법인화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 때 선교회가 해체되면서 부산을 제외한 전국 야간무료의원이 문을 닫았다.


•최태민을 잘 몰랐다
‘최태민이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알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변 목사는 “당시에는 아무도 그런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에 목사들이 이용을 당했지, 최 씨의 실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와 목회자들이 구국선교회를 외면할 수 없었다. 교회와 목사들 또한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최 씨가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을 당시에도 변 목사와 전국 16개 시도 단장들도 함께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최 씨가 세 번이나 단장직에서 해임을 하려고 했다. 몇몇 사람들이 이권 청탁을 해왔고, 이를 들어주지 않자, 최 씨를 찾아가 나를 모함했고, 단장직에서 해임될 뻔 했다. 결국 최씨 본인이 중앙정보부 수사를 받아 강원도로 유배를 가게 됐다”고 말했다. 변 목사는 “다른 건 몰라도 스스로 ‘권력은 인분이다’라는 생각을 항상 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 가까이 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난해도 감수할 것
변 목사는 “지난 40년 동안 경로복지회를 운영하면서 ‘어용목사’, ‘정부 앞잡이’라는 말을 듣고 살아왔다. 최순실 사건 때문에 구국선교회가 욕을 먹고, 그 유일한 씨앗인 경로복지회를 사람들이 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로복지회가 지난 40년 동안 약 270만 명의 사람들을 무료진료 해 왔다. 그리고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입법활동도 요구해 왔고, 일부 법안도 통과 됐다. 공과 과는 구별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변 목사는 초창기 구국선교회의 정신은 순수했다고 재차 강조하면서, 최태민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지 않았다면, 구국선교회가 한국교회 역사에서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가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겠다는 초창기 선교회의 순수한 마음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나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가 오해를 받고, 비난받는 것은 참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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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남 목사 “구국선교회 출발은 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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