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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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부부들끼리 회식자리. 남보기도 좋게 고등어 찜 한 점을 아내의 밥그릇위에 덜렁 얹어 놓았다.)
남편/ 당신도 좀 배워요 배워. 진호엄마의 요리솜씨를 좀 배우라고!! 고등어 찜은 이렇게 하는 거야.
(모든 사람들은 웃었다. 악의 없이 큰소리로 한바탕 웃었다. 웬걸 아내 눈치를 보니까 아내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있다)
아내/ 진호엄마 하고 사시구려. (또 한바탕 웃고 말았으나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남편/ 냉수 한 잔 마십시다.
아내/ 진호 엄마한테 말씀하세요.
남편/ 거기에 왜 죄 없는 진호 엄마가 들어가나?
아내/ 고등어 찜엔 당신의 마누라는 왜 들어가죠?
남편/ 말을 쑥떡같이 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야!
아내/ 흥, 서당 훈장님이 한 분 부족하다 했더니 우리 집에 떡 버티고 앉아 계셨구만요.
남편/닥치지 못해!?
“부부싸움을 합시다”고 하는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 한토막이다. 부부싸움은 그 형태가 하도 다양해 여태까지 인류가 개발해 놓은 발명품의 수를 능가할 정도다. 그리고 그 빈도 역시 역사 이래 개최해온 공식, 비공식의 각종 스포츠 경기 회수를 넘어서고도 남음이 있다.
국가 간의 전쟁만이 아니다. 가정 안에도 포성 없는 전쟁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10분에 1명꼴로 발생하는 피해자. 하루에 45명 정도가 가정 폭력 사범으로 검거되고 있다는 통계수치는 이제 더 이상 화제도 아니다. 여기에 잠재적인 피해자까지 합친다면 그 피해건수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형태도 매우 다양해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행해지는 아동학대에다 부양을 거부하는 노인 학대, 심지어는 근친상간에다 존속살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중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까이 있는 셈이다. 더구나 국가 간의 분쟁은 시간이 지나면 포성은 멈추어지고 복구 작업이라도 이어지는데 가정 안의 고부(姑婦)전쟁은 수 천 년이 흐르는 지금도 멈출 줄 모른다. 정부는 이 폭력을 추방해 보기 위해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1998) 까지 제정했지만 별무 성과다.
종종 ‘평화’가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되어지는 때가 있다. 즉 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큼 큰 모순이 없다. 평화의 진정한 개념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육체의 각 기관사이의 건전한 조화와 통일’(시 38:3) ‘번영과 형통’(신 23:6, 욥 15:21), ‘계획의 완성’(삿 18:5), ‘조화 있는 공동체’(삼하 17:3, 출 18:23, 시 125:5)등을 의미한다.
똑같은 맥락에서 가정생활에 있어 ‘불 충실’이 ‘충실’의 반대가 아닌 것과 같다. 종종 사람들은 항변한다. 내가 외도한 일도 없고 부정한 일을 저지른 일이 없는데 무엇이 불 충실이냐고 말이다. 하지만 불충실이란 가정 밖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도 일어난다. 즉 내가 남편과 아내로서의 의무의 불이행이나 부모 역할의 유기(遺棄)가 정서폭력에 해당하는 이치와 같다.
따라서 가정의 평화란 갈등이 없고 부부 싸움이 없는 그런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보다 적극적으로 용서와 화해, 치유와 회복, 감사와 사랑,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 찬 가정천국을 이루어 내는데 평화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날 한 기자가 물었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가장 긴급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테레사 수녀는 웃으면서 질문자에게 답했다. “기자 선생께서 빨리 집에 돌아가셔서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긴급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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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칼럼] 평화, 평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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