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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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32세 젊은 나이의 미국 청년 사무엘 포맨 무어 선교사(Samuel Forman Moore, 한국명 : 모삼열, 1840~1906)가 조선 땅에 발을 딛고 현재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 ‘곤당골교회’를 세우고, ‘예수교학당’을 운영하여 학생을 교육했다.
그 교육을 받은 학생 가운데 ‘봉주리’라는 학생의 부친이 백정 박 씨였다. 그 당시 조선 땅에서 백정은 개, 소, 돼지로 취급하며 이름을 갖지 못할 정도로 천대했다. 그런데 그 백정 박 씨가 장티푸스가 걸리자 무어 선교사는 그를 그 당시 고종황제의 어의였던 ‘에비슨’에게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했다. 박 씨가 감격하여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다. 에비슨은 세프란스병원과 의과대학의 설립자이다. 
에비슨은 고종황제의 총의를 받아 감히 백정 박 씨를 치료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해주었다. 그리고 백정 박 씨의 이름을 ‘박성춘(朴成春)’이라 불렀고, 세례도 베풀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출석하던 백정출신 박성춘의 활동이 많아지자 곤당골교회 양반 교인들이 교회 출석을 거부하여 결국 옆에다 홍문동교회를 따로 세워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 홍문동교회는 훗날 곤당골교회와 합병하여 중앙교회로 이름을 개명하다가 훗날 지금의 ‘승동교회’가 된 것이다.
1908년 왕족이었던 이여한이 장로가 되고 1911년 최초로 백정출신 박성춘도 장로가 되어 같은 교회를 섬기게 됐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인 백정 장로가 왕족 장로와 한 교회에 출석하며 교인들을 섬기는 기적과 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박성춘의 아들 박서양(朴瑞陽, 1885.8. 30~1940.12.15.)이 한국 최초의 의사가 되다
박성춘의 아들이었던 ‘봉주리’는 박봉출이란 이름을 가졌고, 후에 박서양으로 개명했다. 박서양은 한국최초병원인 제중원에서 에비슨에게 의술을 배워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가 되었다.
무어 선교사의 간절한 탄원으로 고종황제는 이 땅의 백정들에게 이름을 가지고 호적을 등록할 수 있게 됐다. 
‘사도행전 9장 43절~10장 8절’에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느니라고 기록됐다. 무두장이는 바로 짐승가죽을 벗기는 직업의 구두, 가방 제품에 종사하는 최하층민 ‘뷔르사’에서 파생된 이름의 천한 계층으로 그 집에서 여러 날을 베드로와 유숙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 안에서는 이방인과 세리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이방인 고넬료 가정과 같은 축복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극치를 보여줬다. 백정집안을 해방 시켜 줄 수 있었던 장본인인 무어선교사는 지금 양화진 묘역에 잠들어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사랑이야기로, 복음의 위력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로 빛을 발하고 있다. 한 사람까지도 여러분들은 귀하게 여기고 계십니까?
박서양의 여동생 박양빈은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가문의 신필호와 결혼했다. 의사이자 개화된 집안에서는 그의 집안이 백정가문인 것에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백정 가문이 명문가문을 이루는 놀라운 역사가 실제 일어났다.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와 같은 사연이 이 땅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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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선교사와 승동교회 비하인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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