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0(토)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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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 창설 회원 중 한 사람인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1549년 일본에 도착해 2년 동안 교회를 개척하였다. 채 한 세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기독교인의 수는 30만 명으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그러나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臣秀吉)에 의해 포교가 금지되었고, 17세기 들어서는 일본 막부(幕府)와 지방 관리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기독교인을 색출하였다. 이때 사용한 방법이 예수나 성모 초상을 새긴 동판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후미에(踏繪)’다. 기꺼이 밟거나 침을 뱉고 지나감으로써 배교(背敎)한 사람은 살려주었으나, 그렇지 않은 자는 갖가지 악랄한 고문과 함께 처형하였다.
 특히 체포된 선교사들의 경우에는 처형하기보다는 신도들의 고문이나 처형을 옆에서 지켜보게 함으로써, 배교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즉, 배교하면 고문 받는 신도들을 살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거는 것이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 ‘후미에판’ 앞에 선 선교사에게 주의 음성이 들린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한 가톨릭 선교사가 배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 《침묵》 | 저자인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로서,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 소설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원제 沈默. 홍성사, 2003(개정판). 13,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올해는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 서거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침묵》은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 소설은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日, 총포에 더 관심있어 가톨릭 허용
김길구 : 이 소설은 17세기 일본에서 일어났던 가톨릭 신자와 선교사들의 순교와 배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가 오늘에도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60여 개국의 2억 명이 넘는 크리스천들이 아직도 국가의 압제 밑에서 순교를 각오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김현호 : 저번에 읽었던 《제자도》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죠. 존 스토트 목사는 타문화권 선교사들은 선교지의 특성으로 인해 순교를 각오하고 선교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복음은 그 사회에 변화를 던지므로 도전에 직면합니다.
김수성 :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가톨릭을 박해한 배경이 무엇인지가 우선 궁금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봉장이었던 고시니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십자가가 그려진 군기(軍旗)를 사용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김길구 : 우리 천주교가 아래로부터의 선교(전교)였다면, 일본은 ‘위로부터’였습니다. 포르투갈로 부터 전래된 두 정의 철포(화승총으로 개량)와 화약제조법이 전투의 양상을 바꿔 일본 전국 통일의 초석이 되었듯이 앞선 문물 교류로 인한 막대한 이익, 강력한 불교 세력의 견제, 규슈지방 다이묘들의 가톨릭 포용정책,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역사의 아이러니인 하나님 호칭의 오역으로 불교의 한 종파로 오해한 점 등이 초기 선교의 물꼬를 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 후 그런 요인이 해소된 것이죠.
김현호 : 소설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듯이, 당시 일본에서는 가톨릭과 신교 간의 선교 대립,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의 무역 갈등 등 기독교인 간의 분열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열상으로 인해 일본 권부의 신뢰감을 잃게 된 것도 기독교 박해의 한 원인 아닐까요?
김수성 : 당시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선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한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치하에 박해가 본격화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길구 : 한편으로 보면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가 교토시대와 결별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기독교의 급격한 성장에 대해 기존 불교 세력의 불만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특히 가톨릭 신자였던 고시니는 도쿠가와의 집권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장수이기도 합니다.
 
후미에4.jpg▲ 일본 막부는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동네사람 모두가 관리들이 보는 앞에서 성화가 새겨진 동판이나 목판을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를 ‘후미에’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 보여줘
김현호 : 17세기 들어서는 정말 갖가지 고문이 자행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선교사를 배교시키기 위해 옆에서 신자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 가운데는 기꺼이 ‘후미에’를 한 신자들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관념이 아니라, 자기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신자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는 현장에서.
김길구 : 작가가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이런 고난과 죽음에도 ‘침묵’을 지키는 하나님. 그러나 후기에 나와 있듯이, 소설과 달리 실제로는 선교사들이 고문에 못 이겨 배교했다고 합니다만, 하나님의 ‘현존’은 나치 치하의 본회퍼 같은 현대 신학자들의 고민이기도 했지요.
김수성 : 작가는 일본에서 가톨릭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농민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으로 취급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평생 굶주리고 비참하게 살아왔던 그들에게 선교사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나 죽음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김현호 : 그런데도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었죠. 선교사가 숨어서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신도가 바다에서 순교합니다. “지금 일본 신도의 순교는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입니다. 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세월호 침몰과 아직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김수성 :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그들이 나를 살렸네》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본에 유독 기독교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구 기독교가 하나님의 부성(父性)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는 일본인들에게 모성(母性)도 가진 하나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일본의 어떤 속담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네 가지는 불, 지진, 벼락, 그리고 아버지이다.’
김현호 : 결국 이 책은 인간애를 통한 이웃사랑이 궁극적인 신의 모습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참사랑은 타자를 위해 배교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타적인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지점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김길구 : 한편, 이 소설과 달리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의 순교는 훌륭한 신앙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순절을 앞두고 이 책을 보면서 양화진에 안치된 초기 선교사들의 삶과 죽음이 더욱 고결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일본화한 그리스도인 지금도 존재해
김현호 : 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교자가 이름이 전해지는 사람만 해도 3,792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일본에는 기독교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순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라는 말대로 복음화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져 있는데, 일본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김수성 : 작가도 배교한 선교사들의 입을 빌려 강조하듯이, 일본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는 ‘늪’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종교는 물론이고 모든 문화를 ‘일본화시키는 늪’이라고 할까요.
김길구 : 신앙의 토착화와 관련된 내용입니다만, 필립 얀시에 따르면, 19세기 일본 정부가 나가사키에 가톨릭성당 한 곳을 허용했을 때 숨어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상당수 나타났다고 합니다. 240년 동안 비밀리에 모여왔던 ‘가쿠레 기리시탄(隱れ 切支丹)’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전례서 없이 존속해온 결과, 그들의 신앙은 가톨릭, 불교, 애니미즘, 신도(神道)의 기괴한 혼합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결사체가 있다고 합니다.
김현호 : 작가는 이에 대해서도 관리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죠. 일본 권부가 선교사를 배교시키는데 힘을 쏟는 이유는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라고, 이미 일부 지역의 농민들이 몰래 받들고 있는 하나님은 가톨릭교의 하나님과 비슷해도 사실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되었다고.
김길구 : 이 소설은 신학교 다닐 때 필독서 중의 하나였습니다.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면서 몰입하도록 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이런 문학적 성취가 세월과 종파를 초월해 꾸준히 읽게 하는 요인인 것 같습니다.
김현호 : ‘내가 죽으면 관 속에 《침묵》과 《깊은 강》 두 권의 소설책을 넣어 달라’고 유언할 정도로 작가가 애착을 가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김길구 : 다음에는 김기석 목사가 쓴 《흔들리며 걷는 길》(포이에마, 2014)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민음사
《예수양 주기철》 / 김인수 / 홍성사
《십자가》 / 김응국 / 규장
기쁨의 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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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⑫] “그들을 죽인 후에도 바다는 더욱 침묵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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